사회 사회일반

[朴대통령 탄핵] 국정농단이 부른 촛불 → 특검·인용까지...‘숨가빴던 탄핵열차’

<세월호 불신서 탄핵까지>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 ‘박근혜 정부’ 오랜 불신

朴·崔 유착관계로 사익추구 불거지며 분노로 폭발

특검, 李 → 崔 → 朴으로 이어지는 ‘뇌물의혹’ 집중 조사

90여일 치열한 법리 공방 끝 탄핵 인용으로 매듭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오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싹튼 불신의 씨앗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사이의 오랜 유착 관계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국정 농단으로 불거지자 분노로 자라났다. 특히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로 국정 농단을 비롯해 정경유착 고리마저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최종 선고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태블릿PC가 촉발한 200만 촛불=시작은 태블릿PC였다. 한 언론사에서 최씨가 사용했다는 태블릿PC를 공개하자 민심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민간인인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고 고위급 인사에 관여하는 등 국정 전반을 좌지우지한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탓이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1차 담화에서 일부 사실을 시인하면서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한때 2만명에 불과했던 촛불집회 참여 인원이 한 달여 만에 200만명으로 100배 이상 늘어날 정도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도 집권 이후 최저 수준인 4%대로 떨어졌다.


◇檢 ‘비선 실세’ 최순실 구속=최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한 특별수사본부를 선봉에 세웠다. 특수본은 전방위 압수수색과 줄소환으로 차츰 청와대를 압박했다. 특히 독일로 도피했다가 귀국한 최씨를 구속하면서 검찰 수사에 물꼬가 트였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윗선이자 박 전 대통령 최측근들도 구속 수사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이 수사 공정성을 이유로 검찰 수사를 거부하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는 물거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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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로 전락한 朴 전 대통령=수사의 공이 박영수 특별검사로 넘어가면서 수사에도 속도가 붙었다. 수사인력만 100명에 웃도는 매머드급 수사팀을 꾸린 특검은 ‘이재용→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지는 뇌물 의혹을 파헤치는 데 주력했다. 결국 삼성그룹 창립 이래 최초로 총수를 구속하는 성과를 일궜다. 또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을 파헤치면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도 구속했다. 하지만 성과는 거기까지였다. 청와대 압수수색과 박 전 대통령 대면조사는 청와대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번번이 무산됐다.

◇탄핵심판 가시밭길의 연속=대한민국과 현 정부의 운명을 결정지을 탄핵 심판은 90여일의 치열한 법리 공방 끝에 탄핵 인용으로 마무리됐다. 헌재는 최종 판결을 통해 건국 이래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박한철 전 헌재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이 변수로 작용했다. 두 재판관 퇴임으로 헌재가 재판관 7인 체제로 돌아가게 되면 심리정족수(7인)에 못 미쳐 자칫 ‘식물 헌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헌재가 이 재판관 퇴임일(13일)까지 박 대통령 탄핵 심판의 결론을 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박 전 대통령 측은 거세게 반발하며 심판정 안팎에서 격돌했다.

안현덕·진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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