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상승 전에 장기 자금을 마련하려는 주요국 정부들이 만기 40년 이상의 초장기 국채 발행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도 역사상 처음으로 100년 만기인 ‘센츄리 국채’ 발행 검토에 들어갔다. 저금리 시대에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거두려는 투자자들의 수요도 여전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초장기 국채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경제방송 CNBC에 출연해 50년물 또는 100년물 국채를 발행에 대해 “우리가 아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라며 “시장과 투자자들, 여러 분야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외신에 따르면 미 재무부 산하 차입자문위원회는 1월 말 금리 상승 국면에서 초장기 국채 발행이 미칠 경제적 여파에 대해 이미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미국이 발행한 국채 중 가장 만기가 긴 상품은 30년물이었다.
일본도 올해 40년 만기 국채 발행 규모를 사상 최대인 3조엔 대로 늘리기로 했다. 아울러 아소 다로 일 재무상의 부인에도 재무성이 사상 첫 50년 만기 국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에 이어 이달 말 3,000억원 내외로 50년 만기 국채를 추가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일본까지 만기 50년 이상 국채 발행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올해 초장기 국채를 향한 열기는 지난해만큼이나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2017년 OECD 회원국의 국가차입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초장기 국채를 발행한 나라는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한국 등 8개국이다. 벨기에와 아일랜드는 만기 100년짜리 센츄리 국채를 발행에 성공했다. 이들이 초장기 국채를 통해 끌어들인 자금은 276억 달러다.
OECD는 “대다수 국가가 전략적으로 만기가 30년이 넘는 국채 발행을 결정하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낮은 금리에 (조달비용을) 고정하고 기존 채무 상환 기일을 연장하는 데 따르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장기 국채에 대한 수요도 꾸준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 극우 정당이 득세하고 재정위기 가능성이 커지는 등 정치적 불안이 커지고 곧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서 국채 수익률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됨에도 초장기 국채는 발행과 동시에 시장에서 빠르게 소화되고 있다.
이른바 ‘르펜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프랑스가 지난 1월 20년·30년·50년물 국채를 가뿐히 매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가 오는 4월 1차 투표가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전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며 유로화 가치가 폭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50년물 주문을 주저하지 않았다.
지난달 7일 이뤄진 벨기에의 국채 매각에서도 7년물보다 40년물 주문 경쟁이 더 뜨거웠다. 이에 따라 40년물 국채의 발행 수익률은 당초 예상보다 7~8bp(1bp=0.01%포인트) 낮아졌지만, 7년물에 대해서는 4~5bp 정도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벨기에는 지난해에도 만기 100년짜리 국채 1억 달러 어치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바 있다.
이러한 초장기 국채의 인기는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국채에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로 투자하려는 수요와 고정적인 수익을 얻고 싶어하는 장기자금 운영고객들의 투자 수요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만기가 긴 국채의 돌풍은 높은 수익률에 대한 투자자들의 욕구를 보여준다”며 “보험회사나 연기금처럼 장기 채무와 투자를 연결해야 하는 투자자들도 초장기국채의 수요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