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로 하면 티가 나잖아요. 어떤 역할을 맡든 공감을 주기 위해 노력해요. 제 작품을 본 관객들이, ‘제 얘기 같아 너무 공감 됐어요’라고 말씀해주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팬들이 편지든 뭐든 다가와서 본인의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줄 때가 좋아요. 제가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는 의미도 되니까요. 그런 반응들이 다 고맙더라구요.”
9일 개봉한 김경원 감독의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이하 ‘아티스트’)로 관객을 만나고 있는 류현경은 “일단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서 흥미로운 영화이다.”고 소개했다.
‘아티스트’는 어느 날 눈을 뜨니 세상을 발칵 뒤집은 아티스트로 탄생한 지젤(류현경 분)과 아티스트를 알아보는 안목을 지닌 재범(박정민)의 살짝 놀라운 비밀 프로젝트를 다뤘다. 자신은 ‘아티스트’라고 자부하지만 현실은 무명 화가인 지젤은 이 비밀 프로젝트로 인해 천재 화가로 뒤바뀌게 된다. 유작 프리미엄의 아이러니가 지젤의 발목을 잡을지 여부는 영화를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는 블랙코미디 매력을 물씬 풍기며, 예술가의 본질과 예술의 가치, 의미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매력은 먹물 냄새 풍기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통쾌하게 전하고 있다는 점.
“사실 우리 영화는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제목만 보고 지레 짐작할 순 있겠지만, ‘그게 아니구나’ 하셔도 더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을까. 자신의 신념과 가지고 있는 방향들이 어떤 지점에서 흔들릴 때 한번쯤 직면하게 되는 고민들이 공감대를 넓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시사회 이후 언론의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에 이어 동료 배우들의 호평 역시 이어졌다. 류현경의 절친으로 알려진 조은지, 오정세, 박정민, 배성우, 고아성, 김의성 등이 공감을 표한 것. 이외에도 2012년 SBS 주말드라마 ‘맛있는 인생’에서 호흡을 맞춘 유연석, 유다인, 혜리(걸스데이) 역시 마음 속으로 서로를 늘 응원하는 사이이다. 지난 ‘아티스트’ VIP시사회에는 다들 류현경을 응원하기 위해 두발 벗고 나섰다.
그 중 배성우씨의 감상평이 흥미로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재미있던데”란 한마디만 남긴 배성우에게 류현경은 ‘진짜 어땠어?’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너무 재미있었어”라며 영화에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아티스트’에 대한 한마디 평은 ‘재미있다’란 단어 하나로 설명이 된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배우” 류현경은 “‘지젤’과 완전히 닮은 부분을 꼬집어 말하기 보다는, 모든 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대면해야 하는 장벽과 고민의 길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제가 예술이란 걸 전문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티스트’란 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도달하는 모든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그림을 예로 들면, 솔직히 제가 그 그림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서 ‘대단하구나’란 걸 느낀 적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예술혼이 녹아있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더 커져요. 배우의 길 역시 그 점에서 비슷해요.”
본인의 일에 전념하는 이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리고 섹시한 인상을 준다. 영화 속에선 섹시한 류현경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류현경은 지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동양화를배웠다고 한다. 정성을 들여 캔버스 종이를 만들고, 염료를 이용해 물감을 개어내는 과정을 진득하게 이어나가는 과정은 마치 장인의 경지를 보는 듯 했다. 구석구석 자신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밑그림 과정을 어느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모습에선 ‘지젤’의 매력 아니 류현경의 매력이 묻어나왔다.
“동양화 한편을 그리기 위해 그렇게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걸 이 전엔 잘 몰랐어요. 직접 배우고 준비하면서 ‘아. 이 과정이 진짜 예술이구나’ 란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의 생각을 펼치기까지 과정을 무시할 수 없구나란 생각과 함께요.”
1996년 드라마 ‘곰탕’에서 배우 김혜수의 아역으로 데뷔한 이후 21년간 배우로 살아온 류현경. 이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뒤 25살에 만난 영화 ‘신기뎐’(2008년) 촬영을 마치고 나서야 평생 배우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단편영화 ‘불협화음’, ‘사과 어떨까?’ 등을 연출했고 2009년에는 ‘광태의 기초’가 충무로국제영화제와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14년 연극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연극 무대에 처음 도전 한 이후 최근 연극판 ‘러브 액추얼리’로 눈길을 끌었던 ‘올모스트 메인’으로 다시 한번 대학로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직접 만났다.
스스로 특별한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류현경의 장점은 ‘낯가리지 않는 성격’이고 강점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점’이다. 그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쉬운 장면이 눈에 들어와, ‘연습과 노력을 더 해야겠구나’란 생각이 커진다고 했다.
‘교과서적인 답변 아니냐’고 딴지를 걸었더니, “그게 제일 어려운거잖아요.”란 묵직한 답이 돌아왔다.
“진짜 계속 찍을 때마다 ‘난 아직 부족하구나’ 란 생각이 들어요. 이걸 더 연습을 잘 했으면 좀 더 만족스러웠을텐데...이순재 선생님이 현장에 오셔서, 장면을 찍는데 진짜 박중식 교수님 같은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대단하다는 걸 느꼈어요. 저라는 사람은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연습을 안 하면 못하거든요. 노력하고 연습하는 자세는 정말 끝까지 지켜야 할 것 같아요.”
지난 2015년 개봉한 ‘오피스’ 이후 약 2년 만에 ‘아티스트’로 컴백한 류현경은 최근 임성찬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전쟁’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한석규와 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 만으로도 “너무 꿈만 같고, 촬영장에서 매번 감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등산을 하거나, 어머니와의 대화를 하면서 푼다는 그는 “평생 배우로 살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30대가 되고 나서 달라진 게 없냐고 묻기도 하시는데,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배우로서 마음가짐은 늘 똑같은 것 같아요.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서 많은 분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해요. 그렇게 좋은 배우로 잘 쓰일 수 있었음 해요.”
조용 조용 공감의 미소를 번지게 하는 류현경과의 인터뷰는 따뜻했다. 춥거나 덥지 않아 딱 좋은 봄날의 인터뷰 일정이 그렇게 끝나는가 싶어 아쉬운 찰나, 절친 박정민이 등장했다. 본인의 인터뷰 일정을 끝마치고 올라온 박정민은 “누이 수고해”란 말을 남긴 후, 바람처럼 사라졌다. 동생의 인사를 받은 류현경의 털털한 웃음소리가 리듬감 있게 울려 퍼졌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