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50일을 갓 넘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 커넥션’의 수렁에 더욱 깊숙이 빠져 들어가고 있다.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무역 및 이민정책 등도 내부 반발과 위헌 논란으로 표류 중이어서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한 돌파구가 도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 워싱턴타임스(WT)는 지난 1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로저 스톤이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을 상징하는 인물 ‘구시퍼 2.0’과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캠프에서 선거참모로 일했던 스톤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기간에 구시퍼2.0과 트위터로 메시지를 교환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지난해 6월부터 민주당의 내부 정보를 빼내 공개한 구시퍼2.0은 러시아 정보 당국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톤은 “형식적이고 아주 짧은 따분한 대화여서 아예 잊고 있었다”며 러시아 커넥션과의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현지에서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스톤과 구시퍼2.0의 트위터 접촉 사실만으로도 러시아 커넥션에 엮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등 미 정계에서도 이번 일로 지금까지 불거진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이 더욱 깊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무역·이민 등 핵심정책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백악관 내 소식통을 인용해 무역정책의 주도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였던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 보호무역주의 그룹이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이끄는 자유무역주의 그룹에 사실상 패배했다고 보도했다.
FT는 “나바로 위원장이 행정부에서 점차 고립되는 반면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콘 위원장은 백악관 내 세력이 커지고 인력이 추가 기용되는 등 사실상 우위를 점하는 데 성공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보수 진영의 강력한 반발을 딛고 임명된 앤드루 퀸 NEC 대통령 특별보좌관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협상을 담당했던 외교관이자 자유무역 지지자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웠던 보호무역 정책을 스스로 부인하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반면 이날 경제민족주의 그룹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꼽히는 배넌 수석전략가가 유권자 등록법 위반 혐의로 플로리다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가 나오는 등 트럼프 지지그룹의 이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 밖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 차례 법정공방 끝에 새롭게 내놓은 ‘반이민 행정명령’도 반발에 직면해 있다. CNN에 따르면 지난 10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연방지법은 시리아에 있는 부인과 딸을 데려오기 위해 수정된 반이민 행정명령의 집행 중지를 요청한 시리아인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12일 미국의 전현직 외교전문가 134명도 공개 서한을 통해 “안보에 해롭고 체면에 먹칠하는 정책”이라고 반이민 행정명령 수정안을 집단 규탄해 오는 16일 발효를 앞둔 수정 행정명령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