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서울 성동구 반포동 일대 허허벌판에 3,786가구의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서울 한강 이남에 처음으로 지어진 대단지 아파트, 반포 주공1단지다. 반포동 일대는 이른바 ‘강남3구’ 중에서도 대표적인 고급 주거지지만 당시만 해도 행정구역상 강 건너 성동구에 포함될 정도로 낙후된 곳이었다. 이후 반포 일대를 비롯해 잠실·여의도 일대에 잇따라 대규모 아파트촌이 조성되며 서울의 주거 중심축은 강북에서 강남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반포 주공1단지는 라디에이터 난방까지 갖춘 ‘고급 아파트’로 화제가 됐지만 이후 1970년대 중후반에 지어진 대부분 단지는 연탄 난방을 하는 10평형대의 5층짜리 서민아파트였다.
1970년대 당시 5층짜리 서민아파트가 있던 곳에는 대부분 이제 강남권에서도 내로라하는 고가의 고층 아파트들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재건축의 힘이다. 현재 공사가 한창인 강남구 개포지구 일대와 반포 주공1단지까지 사업이 완료되면 서울시내 저층 아파트는 재건축을 마무리 짓고 조만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저층 아파트의 소멸은 곧 서울 재건축의 중심축이 10~15층 안팎의 중층 단지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서울 시내 재건축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여의도·압구정동 일대와 대치동 은마, 잠실동 주공5단지 아파트는 모두 1970년대 말에 지어진 1세대 중층 단지들이다.
강남권 요지조차 사업성 난항
향후 비강남·수도권 중층단지는
정비사업 추진 자체가 어려워져
아파트재생 새 패러다임 찾아야
요즘 강남권 중층 재건축의 화두는 ‘초고층’이다. 특히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3종 일반주거지역에 대해 35층 이하로 제한하고 있는 서울시의 층고 제한에 맞서 최대 49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건립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저층 아파트 당시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초고층 재건축 논란이 중층 아파트에서 불거진 이유는 ‘수익성’ 때문이다. 은마아파트의 경우 기존 용적률이 200%가 넘는다. 100%가 채 안되는 저층 단지들과 비교하면 2배에 달하는 밀도다. 3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법적용적률 상한이 300%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재건축을 통한 단지 전체의 연면적 증가 폭이 적을 수 밖에 없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로서는 낮은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초고층 조망권 프리미엄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의 입장은 단호하다.
이번 논란은 표면적으로는 지자체와 주민간 단순한 힘겨루기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앞으로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 재정비사업이 커다란 난제에 직면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강남권 요지조차 사업성 악화를 겪고 있다는 것은 입지가 떨어지는 비강남권이나 수도권 중층 단지는 재건축 추진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심지어 중·고층으로 지어진 분당·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의 경우 지은지 20년이 훌쩍 넘으며 빠르게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높은 밀도 때문에 현재로서는 재생사업 자체에 답이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일부 단지는 리모델링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하지만 그마저도 답보 상태다.
멈춰선 중층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허용 용적률을 과감히 늘려주거나 재건축을 ‘돈 버는 투자’로 보는 기존의 시각이 바뀌어야 하지만 이 역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용적률을 높인다는 것은 그만큼 좁은 땅에 더 많은 인구가 몰린다는 것이다. 이는 곧 도시의 질 하락을 초래한다. 낡은 집 고치는데 돈을 들이는 게 당연하지만 여전히 시장 참여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와 지자체, 주민 등 시장 참여자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노후 아파트 재생 패러다임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맞닥뜨린 셈이다.
사업성 확보를 위해 주거지 밀도와 층고를 마냥 끌어올릴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슬럼화하는 노후 아파트 문제를 마냥 손 놓고 방치할 수도 없다. 이 딜레마를 풀지 못할 경우 양질의 주택 공급 위축은 물론 도시의 노후 주거지 재생 역시 멈출 수 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논란을 특정 단지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