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과학고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을 차례로 졸업하고 LG전자에서 근무하던 유망한 20대 공학도가 있었다. 그는 불현듯 전형적인 공학도의 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공학도는 “법학은 낯설었고 재학 중 임신·출산까지 겹쳐 힘들었지만 갖은 노력 끝에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어요. 로스쿨 동기생들이 저보고 아기 두뇌까지 공부에 쓴다며 ‘듀얼코어’라는 별명을 붙여줬지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정보기술(IT)·금융 분야 소송·자문을 담당하는 김계정 변호사의 이야기다.
13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 변호사는 “카이스트와 LG전자에서 줄곧 데이터베이스 연구에 몰두했다”며 “금융기관들이 핀테크·빅데이터·클라우드 같은 데이터 기술을 접목한 새 서비스를 출범할 때 법률 자문을 주로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세계적 IT 기업들이 국내에서 사업을 벌일 때도 한국의 규제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며 “금융기관·기업을 막론하고 IT 인프라 구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심도 있는 IT 지식을 바탕에 둔 법률 서비스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해외 굴지의 IT 업체인 A사가 벌인 지적재산권 분쟁에서 전공 기술을 십분 활용해 합의를 이끈 경험이 있다. 당시 A사는 자사가 개발한 업무용 소프트웨어(SW) 사용 계약을 국내 B사와 맺었는데 B사가 이 프로그램을 복제해 당초 계약 규모보다 초과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A사를 대리한 김 변호사는 정확한 SW 사용량 데이터를 제시해 B사와의 합의를 주도했다.
김 변호사의 관심사는 IT 혁명을 겪고 있는 금융 분야에 최적의 자문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금융 서비스는 신성장 분야여서 이를 규제할 법률의 정비도 막 시작됐다”고 말했다. 기업과 금융기관은 방대하게 쌓인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신개념 금융·IT 서비스를 만들려는 욕구가 큰데 정밀한 제도가 없어 애를 먹는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IT나 핀테크 이슈를 검토하다 보면 기술 분석뿐 아니라 법률에 맞게 개선 방안까지 제안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기술과 법률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제 경력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자신이 동참한 금융 인프라 혁신의 하나로 지문인식 서비스 출범을 꼽았다. 저장 매체에 공인인증서를 담아두고 금융 거래를 할 때마다 ‘액티브엑스’ 프로그램을 깔아 이용하는 기존 인증 방식은 사용하기 불편할뿐더러 보안 성능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공인인증서 의무사용제가 폐지되면서 금융권은 고객의 생체 정보인 지문·홍체를 활용해 간편하면서도 보안이 강력한 인증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추세다.
빠르게 변화하는 IT 기술과 법률 개정안을 꿰기 위해 날마다 두 분야의 서적을 동시에 탐독한다는 김 변호사는 요즘 금융권에서 각광받는 블록체인 기술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금융투자협회 주도로 지난해 12월 발족한 국내 첫 블록체인 컨소시엄에도 참여해 금융 인증 공동 플랫폼, 청산결제 자동화 등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개발을 위한 법률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가상화폐의 뿌리 기술인 블록체인은 기관의 중앙집중적인 신용 관리 시스템 없이 당사자끼리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 기술이다. 김 변호사는 “인공지능(AI) 분야에도 흥미가 커 장차 AI 법률 서비스 구축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변호사는 “전문화된 법조인은 로스쿨의 지향점이자 무한 경쟁에 직면한 변호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며 “아직 전국 로스쿨이 각자의 전문성을 내세울 정도로 체계적인 발전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계정 김앤장 변호사 프로필
△1999년 한성과학고
△200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
△2005년 KAIST 전산학 석사
△2005~2010년 LG전자 연구원
△2010~2013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2013년 제2회 변호사시험 합격
△201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전문 분야 및 수상 경력
전자금융·핀테크·블록체인·지식재산권 및 금융기관 소송·자문
금융투자협회 블록체인 컨소시엄 참여
카이스트 최우등졸업상(2003)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장상(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