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동시다발적으로 몰아치는 분열의 3각 파고에 직면했다. 1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법안을 가결함에 따라 이달 중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EU 탈퇴 통보가 확실해졌다. 영국에서 시작된 반EU 정서는 15일 네덜란드 총선에서 재확인되며 유럽 대륙으로 번질 것으로 우려된다. 터키 개헌안을 둘러싼 터키와 EU의 갈등은 지난해 양자 간에 체결된 난민협정으로 불똥이 튀면서 EU에 새로운 갈등의 불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EU의 시초인 유럽경제공동체(EEC) 설립 60주년이 되는 2017년, EU 존립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영국 상하원은 13일 브렉시트 협상 권한을 메이 총리에게 위임하는 내용의 EU 법안을 정부 원안대로 가결했다. 하원은 영국 내 EU 시민권자의 거주권한 보장과 탈퇴 합의안에 대한 의회의 거부권 부여를 골자로 한 상원의 수정안을 부결하고 총리에게 EU 탈퇴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만 남겨 의결했으며 상원도 선출직인 하원의 의견을 수용했다. 영국이 브렉시트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입법절차를 모두 마무리함에 따라 메이 총리는 이달 말께 EU와의 브렉시트 협상 시작을 알리는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브렉시트 협상 개시를 앞두고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니콜라 스터전 수반이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 개시 절차에 돌입하는가 하면 북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당도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묻는 남북 아일랜드 총 국민투표의 시행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영국은 EU뿐 아니라 연방 내 분열 조짐마저 일고 있는 실정이다.
브렉시트가 촉발한 유럽 분열의 위기는 네덜란드 총선과 맞물려 증폭되는 모습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당초 의회 절차가 마무리되는 14일 EU 탈퇴 협상을 개시할 것으로 전망됐던 메이 총리가 이달 말로 일정을 늦춘 것은 네덜란드 총선 결과가 브렉시트 협상에 미칠 영향을 지켜보기 위해서라는 분석을 제기했다. 네덜란드 총선에서 넥시트(네덜란드의 EU 탈퇴, Nexit)를 공약으로 내세운 극우 자유당(PVV)이 원내 2당 지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극우 여론이 정책으로 수립될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브렉시트 협상에 임하는 EU의 태도도 한층 강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신들은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극우정당이 제1당 지위를 차지하지는 못해도 국내 극우 정서를 부추겨 기존 정당까지 반이민정책과 포퓰리즘을 확산시킬 우려가 크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실제 네덜란드에서는 PVV가 돌풍을 일으키자 집권 자유민주당(VVD)까지 PVV의 이민자 규제정책을 받아들이면서 보수색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수출의존적인 네덜란드에서도 극우 정서가 들끓는 것은 이민자 유입에 따른 일자리 경쟁과 EU의 긴축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정서가 프랑스·독일·폴란드 등으로 확산되면서 EU 탈퇴 여론이 유럽 전역에서 정책으로 수립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 분열의 뇌관인 난민 문제도 다시 불거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안을 둘러싼 터키와 유럽 간 대립이 격화하면서 터키가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난민송환 협약 재검토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외메르 첼리크 터키 EU 장관은 이날 “EU와 지난해 3월 체결한 협정에서 육상통과 항목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안 홍보를 위해 네덜란드를 방문하려던 터키 외무장관의 입국이 불허된 후 EU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터키가 EU 내 난민 유입을 현저하게 줄이는 데 일조한 난민송환 협정을 파기할 경우 EU 내 반이민 정서와 자국 우선주의의 불길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사태가 ‘난민 반대 여론’과 ‘난민 유입 관리’을 모두 해결해야 하는 EU의 딜레마를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