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골키퍼 피터 슈마이켈(54)은 관중석에서 아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피터가 남긴 눈부신 업적은 20년 전 일이 됐지만 슈마이켈가의 영광은 계속된다. 아들 카스퍼 슈마이켈(31·레스터시티)이 아버지에 버금가는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레스터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깜짝’ 우승을 이끌었던 슈마이켈이 올 시즌은 레스터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으로 안내했다. 15일(한국시간) 영국 레스터에서 열린 세비야(스페인)와의 챔스리그 16강 2차전. 2대0으로 앞선 후반 35분 레스터는 페널티킥을 내줬다. 들어가면 1차전 1대2 패배에 더해 3대3 동점이 될 상황. 그러나 세비야 공수 핵심 스티븐 은존지의 킥은 슈마이켈의 손에 걸렸고 그대로 2대0으로 이긴 레스터는 합계 3대2의 짜릿한 역전을 완성했다. 사상 첫 16강에 이어 8강 신화를 쓴 것이다.
슈마이켈은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잡아버린 데 이어 이번에도 정확하게 방향을 읽어 연장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시종 선방 쇼를 펼친 슈마이켈은 아버지의 기립박수 속에 동료들과 진하게 포옹했다. 영국 가디언은 “페널티킥 히어로 슈마이켈 덕분에 레스터는 새로운 동화를 써내려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레스터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직후인 올 시즌 리그 15위까지 곤두박질쳤지만 챔스 무대에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위 팀을 잡고 8강까지 오르며 지난 시즌 못지않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아스널이 7년째 밟지 못한 8강이다. 레스터는 특히 전임 감독의 시즌 중 경질 뒤 이날까지 3연승을 달리는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은 선수들이 전임 감독에 불만을 품고 태업에 들어갔던 것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슈마이켈은 경기 후 “지난 시즌 같은 경기력이 비로소 나오기 시작했다. 2부리그에서 (3년 만에) 챔스 8강까지 오는 믿을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며 감격해 했다. 아버지 피터는 1999년 맨유에서 트레블(챔스 우승 포함 주요대회 3관왕)을 경험하고 덴마크 대표팀으로는 유로1992에서 우승하는 등 더 화려할 수 없는 경력을 쌓았다. 아들의 경력은 아직은 아버지에 못 미치지만 레스터라는 변방 구단에 새 역사를 안기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더 주목받을 만하다. 세비야는 2대0이던 후반 29분 사미르 나스리가 제이미 바디와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다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추격의 동력을 잃었다.
한편 유벤투스(이탈리아)는 FC포르투(포르투갈)를 1대0으로 눌러 합계 3대0으로 8강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