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DNA와 운명, 잘못된 이해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





유전체 분석 대중화가 눈앞에 와 있다. 유전체는 생명의 기본 설계도다. 유전체 분석이 대중화되면 미래에 걸릴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함으로써 보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맞춤의학, 정밀의학 시대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정말 유전체에 따라 지능이나 신체적 우월함이 결정되거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일까.

사람마다 소질과 특징이 다르고 유전자가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유전체 차이 때문에 같은 노력으로 공부나 운동을 해도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 이뿐 아니다. 가끔 태어나자마자 헤어진 쌍둥이가 수십 년을 따로 살고도 같은 직업과 취향·성격을 갖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본다. 실제로 유전자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는 비슷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에서 나타났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사람을 우월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으로 나누고 우월한 사람만 자손을 남기게 하는 독일 나치의 우생학이다. 나치는 우생학을 앞세워 순수한 독일 혈통만 보존하고 유태인이나 유색인종·동성애자를 대량학살하며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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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전체는 삶의 경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은 유전체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수십 조의 세포로 구성돼 있고 세포에는 똑같은 2만2,000개의 유전자가 있다. 몸 각각의 기능을 하는 세포 안에서 각 유전자가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양만큼만 활성화된다. 게놈 안에는 정밀한 제어시스템이 있음을 의미한다.

후성유전학은 이런 제어시스템 가운데 하나로 유전자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서 유전자가 하는 일을 제어한다. 즉 유전자 서열이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질’을 결정한다면 후성유전학이라는 제어시스템은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양’과 ‘시기’를 제어함으로써 생명 현상을 조절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어도 적절한 시기와 양으로 사용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특히 제어시스템은 타고나는 것보다 환경과 노력으로 결정된다. 유전자보다는 건강한 생활 습관이 건강과 장수에 더 중요한 셈이다.

벌은 모두 같은 애벌레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로열젤리를 먹은 애벌레만 여왕벌로 성장한다. 같은 애벌레지만 여왕벌과 일벌은 신체적 구조가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될 만큼 다르다. 또 한 번 결정된 운명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유전자보다는 환경의 중요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단지 오늘날 금수저 논쟁과 같이 후천적 영향도 본인의 노력보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많아지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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