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바이오시밀러(복제약)의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오리지널 제약사가 바이오시밀러 기업과 손잡고 시장 방어에 나섰다. 글로벌 시장에서 둘이 손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5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기반의 글로벌 제약사 로슈는 지난 13일 미국 제약사 밀란에 자사의 블록버스터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를 제조·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언제부터 팔 수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로슈의 미국 특허는 오는 2019년 만료된다.
이번 합의로 밀란은 특허소송 등에 대한 부담 없이 일본과 브라질·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를 팔 수 있게 됐다. 대신 밀란은 로슈의 자회사 제넨텍에 청구할 예정이었던 2건의 특허무효심판을 철회하기로 했다. 로슈는 밀란에 바이오시밀러 독점권을 줌으로써 오리지널의 독점 판매 기간을 연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형태의 합의는 기존 제약시장에서도 종종 발견되던 ‘위임형 복제약’ 전략과 유사하다. 특허가 풀리면 복제약 기업들의 공세로 매출 하락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특정 기업 한 곳에만 특허 만료 전 복제약 발매를 허용함으로써 후발 주자의 시장 진입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이다. 다만 이럴 경우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도 매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독점 판매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로슈의 이번 결정이 ‘바이오시밀러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실제 로슈에 연간 수십조원의 수익을 안겨줬던 블록버스터 항암제 ‘아바스틴(연 매출 8조5,000억원)’과 ‘허셉틴(7조7,000억원)’ ‘리툭산(약 8조원)’ 모두 바이오시밀러와의 경쟁을 앞둔 상황이어서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리툭산 바이오시밀러는 지난 2월 셀트리온이 ‘트룩시마’라는 이름으로 유럽 판매 허가를 받아 출시를 앞두고 있고, 아바스틴 역시 암젠과 엘러간 연합이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판매 승인을 신청했다.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도 1월 FDA에 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밀란을 필두로 암젠-엘러간, 화이자, 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 등이 앞다퉈 개발 중이다.
로슈가 밀란과 손을 잡으면서 밀란은 미국·유럽 등 선진시장에서 가장 먼저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를 출시하는 제약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후발 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삼성바이오에피스·셀트리온 등 국내 기업들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다만 바이오시밀러는 제품마다 제조공정에 따른 품질·가격 등에 차이가 큰 만큼 후발 주자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화학의약품의 복제약인 제네릭은 성분이나 효과가 워낙 똑같아 시장 진입 기간에 따라 점유율에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바이오시밀러는 똑같은 제품이 하나도 없어 후발 주자라도 가격이나 품질이 뛰어나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