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든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열린 연구실’을 만들겠습니다.”
서울 강남역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 저녁 7시가 되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연구소로 몰려든다. 20대 대학생에서 40대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랩짱(연구 리더)과 함께 연구 노트를 만들고 논문 발표·개발 등 각자 주어진 과제를 수행한다. 누구에게나 열린 연구소, ‘모두의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LG전자 연구원 출신 김승일(42) 박사는 1년 6개월 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이 연구소를 차렸다. 김 소장은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대학원이나 정부 출연 연구소, 기업 연구소에선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하기 어렵지만, 여기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주제의 연구를 마음껏 할 수가 있다”면서 “지도 교수는 없지만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김 소장은 2005년부터 LG전자에서 휴대전화 연구·개발(R&D) 일을 했다. 디지털 신호처리가 주 종목. 주변 소음을 모두 차단해 전화 받는 장소를 들키지 않는 ‘알리바이폰’ 을 개발했다. 알리바이 폰은 당시 LG전자의 10대 기술에 들기도 했다. 틀에 갇힌 일에 ‘이러다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싶어 2010년 사표를 썼고 이후 모두의연구소 창립까지 5년 동안 특허 출원을 위한 발명가 일을 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면서 50개의 특허안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을 했다.
3개 연구실에서 15명의 연구원으로 출발한 모두의 연구소는 현재 170명의 연구원이 있다. 5개의 세미나실에서 딥러닝 연구실, 데이터분석 연구실, 머신러닝 연구실, IoT(사물인터넷) 연구실, 드론 연구실, 가상현실 연구실, 음악공학 연구실 등 21개 연구팀이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연구원들에겐 매달 5만 5,000원의 회비를 받는다. 지난 1월에는 경희사이버대 정지훈 교수로부터 엔젤 투자를 받기도 했다. 연구팀에서 출발해 창업한 사례도 있다. 드론 잡는 드론 연구실에서 출발한 (주)안티 드론 코리아란 회사다. 청와대와 같이 드론 비행이 금지된 곳에 드론이 날아 왔을 때 이를 쫓아가서 잡아오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때 과학자를 꿈꾼다. 자라서 과학과 멀어진 채 살아가게 되지만, 과학에 대한 꿈은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경우가 많다. 김 소장은 “마음속으로는 과학에 대한 꿈이 남아 있는 의사분들이 연구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모두의 연구소에 와서 누구든지 원하는 연구실을 만들고, 재밌어 보이는 연구에 참여하면서 어릴 적 꿈에 가까워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올해 연구원을 250명까지 키우는 것이 목표이며, 장기 계획은 모두의연구소가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교육 방식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다 모두의 연구소처럼 해서 모두의연구소가 필요 없어지는 사회가 왔으면 합니다. 그러면 제가 이 사회에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