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협상 개시와 프랑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22일(현지시간) 불특정 다수를 노린 테러가 발생해 유럽 사회가 또다시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 사건은 특히 지난해 벨기에 브뤼셀 연쇄 자살폭탄 테러 1주년을 맞아 각국이 테러 경계를 강화하는 시점에 발생해 유럽 내 충격이 크다. 유럽의 중요 정치일정을 앞두고 발생한 이번 사건이 반(反)이민·반이슬람 정서에 불을 지피면서 최근 주춤했던 유럽 극우세력이 힘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영국 언론들은 이날 오후2시40분께 런던 웨스트민스터궁을 노린 테러가 발생해 용의자를 포함한 5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40대 아시아계 남성인 용의자는 승용차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다리의 인도로 돌진해 행인들을 들이받은 후 차량이 의사당 인근 난간에 충돌하자 차에서 내려 18~20㎝ 길이의 칼을 들고 웨스트민스터궁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차에 치인 민간인 3명과 칼에 찔린 경찰관 1명이 사망했으며 괴한은 의사당 입구에서 무장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영국 주재 한국대사관은 이 사건으로 한국인 관광객 1명이 중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며 4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현지 경찰은 이번 테러의 공격 대상과 수법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전력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슬람주의에 경도된 자생적 테러리스트인 ‘외로운 늑대’의 소행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관광명소인 웨스트민스터궁 근방에서 ‘소프트타깃(민간인 등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취약한 대상)’을 공격 대상으로 했다는 점과 차량으로 민간인을 들이받은 범행수법은 지난해 프랑스 니스, 독일 베를린 테러와 판박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인물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반이민·반이슬람 극우 정서가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프랑스 학생 3명이 부상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 대통령선거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들은 이번 테러로 유럽 전역에 반이슬람 정서가 고조될 경우 지지율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극우성향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후보의 지지율이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특별세 추가 부과, 불법 이민자에 대한 기본 의료보장 중단. 난민 수용을 요구하는 유럽연합(EU) 탈퇴를 공약으로 내세운 르펜 후보는 최근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전진당 후보에게 지지율이 역전됐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지기반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브렉시트 협상을 준비 중인 영국과 EU가 안보를 중심으로 공조의 실마리를 모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영국을 겨냥해 ‘체리피킹(cherry picking·유리한 것만 취하는 행위)은 없다’며 강경 입장을 유지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테러 대응을 위한 유럽의 연합’을 촉구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이날 연설에서 “테러 앞에서 포기하지 말자”며 “연합해 나아가자”고 연설했다. 스코틀랜드 의회도 영국 연방정부의 요청을 수락해 이날로 예정됐던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의결안 투표를 보류하는 등 테러 앞에서 영연방의 분열 행보도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