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현장투표 결과로 추정되는 문건들이 시중에 유포되자 정치권에서는 예고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2002년 국민경선 도입, 잇따르는 잡음=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내에 국민경선제도가 처음 도입된 후 이를 시행했던 정당마다 경선 관리상의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미흡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두 달 내에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어서 가뜩이나 당이 경선을 꼼꼼히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는데 국민 선거인단이 200만명 이상 참여하다 보니 당으로서는 이를 제대로 관리할 여건이 안 됐다”고 지적했다.
국민경선이라는 외피를 강조하다 보니 몸집 부풀리기에만 몰두했고 시스템 운영상의 문제점과 예상되는 하자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자기 고백이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번에는 투표결과를 부득이하게 중간에 개표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개표정보가 사전에 새어나갈 수 있다고 당내에서 실무자들끼리 다양한 채널로 우려를 제기했지만 지도부에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다”며 “개표과정에서 각 후보 측이 보낸 참관인들이 개표정보를 흘리지 못하도록 사전에 지도를 해야 했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모습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고 전했다.
◇선거인단 인위적 동원 가능성 제기=그나마 개표결과 사전 유출은 예고편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당도 단기간에 대규모로 선거인단을 모으는 방식으로 대선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각 경선 후보 진영에서 선거인단을 돈이나 조직력으로 동원해 표심을 왜곡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국민의당 당직자는 “정당이 실시하는 경선은 정부(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표나 개표작업을 위탁해 공정성을 보완한다고 해도 투표 이전에 선거인단 모집이나 선거운동 과정까지 선관위에 관리를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따라서 각 진영이 위법·편법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을 대거 동원해 선거인단에 참여시키더라도 정부가 이를 현장에서 적발해 제재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렇게 동원된 선거인단이 변장 등을 통해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현장투표를 할 경우 이를 현장에서 걸러낼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도 국민의당의 고민이다.
◇역대 정당들도 잔혹사 경험=앞선 대선에서의 국민경선 과정에서도 선거관리능력 부재 속에 편법·탈법 행위가 속출하고는 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이 국민참여 방식의 대선후보 경선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당시부터 대리선거 논란이 빚어졌을 정도다. 200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국민경선 과정에서 각 후보 지지자 간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하는가 하면 경쟁 당이던 대통합민주신당(현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대규모 선거인단 명의도용 사태가 터지기도 했다. 다양한 민심을 정당후보 선출과정에 담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국민경선제도이지만 그 역사는 ‘잔혹사’에 가까웠다. 박상병 인하대 교수는 “동원투표 등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현재 (국내 정당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자칫하면 국민경선이 여론을 왜곡하고 정당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병권·박효정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