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씽나인’은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한 레전드 엔터테인먼트 식구들 9명의 무인도 표류기를 그린 작품. 극중 최태준은 과거 준오와 같은 밴드 그룹 드리머즈의 베이스 담당이었다가 배우로 전향한 후 라이징 스타로 전성기를 맞은 최태호를 연기했다. 하지만 무인도에 오기 전, 자신의 섀도우 보컬 신재현(연제욱 분)을 몸싸움 도중 숨지게 만든 후 거대한 사건을 덮기 위해 무인도에서 끝없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최태준이 살인마로 변신한 것이다.
최근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스타와 만난 최태준은 “너무 재미있게 좋은 작품을 하게 돼서 즐겁고 행복합니다. 워낙에 좋은 동료 분들과 한 거죠. 작품 끝나서 아쉽기도 하고 ‘미씽나인’이 다시 보고 싶네요. 이번 주에 형들을 다시 만날 것 같아요. 정말 저희는 돈독했던 사이였어요.”라며 작품의 성패와는 또 달리 출연진과의 흐뭇한 추억을 꺼내들었다.
“계속 ‘안녕하세요’ 녹화를 하면서 최근에는 ‘런닝맨’도 재미있게 촬영하고 왔어요. 못 자본 늦잠도 자보고 영화도 보고 그랬어요. VOD로 최근 못 봤던 ‘더킹’이랑 ‘공조’도 봤고요.”라고 ‘미씽나인’ 촬영을 모두 마친 후의 한결 여유로워진 일상을 털어놓는 최태준이다. 지난해 8월 말부터 합류한 ‘안녕하세요’를 이어가고 있는 최태준은 예능과 드라마 영역 모두를 섭렵 중이다. ‘안녕하세요’에서 입증된 깍듯함이 인터뷰 내내 묻어났다. ‘미씽나인’의 다소 아쉬운 시청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부분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떠올렸다.
“(최)태호라는 인물 자체가 감정의 변화도 크고 삶의 파노라마가 어마어마하잖아요. 연기 한 입장에서 욕심도 많이 났고 감정신, 액션신도 많아서 촬영 기간에는 즐거웠어요. 처음에 갈등의 중심이면서 미움을 많이 살 수 있는 인물이라고 들었어요. 대본을 보면서 태호를 많이 이해하려 노력했죠. 마냥 미움만 사는 캐릭터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태호가 어쩌면 가장 약자여서 내면으로 흔들렸던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불쌍한 친구죠.”
‘미씽나인’ 방영과 함께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나온 반응은 ‘배우 최태준의 재발견’이었다. 과거 ‘엄마의 정원’ 차기준, ‘부탁해요 엄마’ 이형순 등으로 보인 건실하고 착실한 청년 이미지에서 이번 작품으로 농도 짙은 악역을 안방극장에 처음 선보이게 됐다. 굳이 짚자면, 지난해 영화 ‘커터’ 속 세준의 진화형 캐릭터라고도 볼 수 있다. 차가운 분위기의 세준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에 끔찍한 일에 가담하게 되는 인물이었다.
“서늘하거나 약간의 소시오패스적인 게 비슷하긴 한데, 태호는 좀 달라요. 일반적인 인격 장애, 사이코패스적 성향의 인물과 달리 생각했어요. 내가 원하던 살인이 아니었고, 그걸 감추려다보니 점점 악해진 거고 살인에 무뎌진 거죠. 그 때마다 스스로 괴로워하고 두려워했던 것들이 살인을 많이 저지르는 걸로 표현된 거 같아요. 살인에는 어떠한 명분을 갖다 붙일 수도 없지만, 시청자들이 미워하기보다 연민을 갖기를 바랐어요.”
“재발견이요? 너무 감사한 얘기죠. 저도 드라마를 쉬지 않고 해왔는데, 배우이다 보니 욕심이 있잖아요. 잘 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은데 어떠한 칭찬보다 연기 면에서 칭찬을 받는 게 가장 기쁘더라고요. 일단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시죠. 저 뿐만 아니라 출연진부터 배우 분들, 스태프 분들까지 모두들 고생했어요. 그래서 더 돈독하고 많은 추억이 남은 것 같아요. 종영 다음날 바로 양양으로 가서 못 다한 이야기도 했어요. 매일 붙어있었는데, 이런 작품을 한 게 귀중한 경험이라 생각해요. 9명 모두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독 ‘미씽나인’은 동료애가 컸던 것 같아요. 선배님들이 저희를 편하게 대해주셨고, 형, 누나들이 너무 잘 대해주셨어요. 제주도에서 다 같이 있었을 때가 좋았죠.”
인기의 반영은 거리에서 만나는 시청자들이 건네는 인사와 온라인 댓글로 가장 크게 나타나는 법. 최태준은 ‘웃픈 경험담’으로 “길을 걷다가 어느 분께서 ‘저도 좀 죽여주세요’라고도 하셨는데 그게 제일 인상에 남네요. 온라인에서 많이 쓰는 말로 ‘태호가 또’라는 말이 생겼던데, 알고 보니 그 말이 ‘불행한 일이 거듭 겹친다’는 뜻이더라고요. 그런 것도 만들어주신 게 감사하죠. 열이, 소희, 김기자 등... 죽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다 세보지도 못했어요.(웃음)”라고 말했다.
‘미씽나인’에서는 거듭 잇는 살인으로 폭력성 짙은 인물의 최태호를 보였다면 실제 최태준은 어떤 성격일까. 과거 건실한 역할들과 워낙 극과 극을 이루기도 해 궁금증이 더해진다. “실제 저는 긍정적이고 밝은 편이에요. 쉴 때는 영화를 자주 보고 친구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스쿠터도 좋아해서 친구들이랑 스쿠터 타고 밥도 자주 먹으러 다녀요. 실제로는 태호처럼 소리를 많이 지르지는 않는데, 그래서 연기할 때 더 재미있었어요. 아직까지 저와 아주 비슷한 캐릭터는 없었던 거 같아요. 너무 착하거나 너무 악했잖아요. 저는 현실적이고 긍정적이고 밝은 캐릭터예요.”
2001년 ‘피아노’로 데뷔해 ‘빠담빠담’ ‘대풍수’ ‘드라마의 제왕’ ‘못난이 주의보’ ‘엄마의 정원’ ‘냄새를 보는 소녀’ ‘부탁해요, 엄마’ ‘옥중화’로 안방극장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최태준은 영화 ‘페이스 메이커’ ‘커터’까지 약 15편의 작품까지 이어오면서 이번 ‘미씽나인’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능성을 인정받게 됐다.
“이번에 악역까지 해봤는데 스스로 캐릭터를 찾아나가는 중이에요. 어떻게 형들은 그렇게 유연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 부러웠는데 저도 언젠가는 로코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제 시작이죠. 너무 기대되고 설레는 것들이 많아요.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기 보다는 전문직도 굉장히 많아서 그것들도 해보고 싶고. 태호는 사이코패스까지는 아니니까 제대로 된 사이코패스가 해보고 싶기도 해요. 매 작품 끝날 때마다 멈춰있지 않고 짧든 길든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정착되지 않고 저라는 배우에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성장하면서 연기하고 싶어요. 모든 분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될 수 있도록 의심 들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좋은 작품을 놓치지 않고 보려 하고 단편영화, 드라마도 최대한 보고 있어요.”
데뷔 이래 가장 큰 찬사를 받은 이번 ‘미씽나인’이 최태준의 연기 인생에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될 것이다. 그가 가장 크게 얻은 것과 느낀 바는 이렇다.
“배우가 결코 편하게 연기해서는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내가 힘들고 절실한 만큼 시청자분들이 편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나태함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식어 욕심은 전혀 없고요. 제가 하는 일이 배우이지만, 아직 배우라하기에는 스스로 부끄러워요. 배우에 대한 존경스러운 부분이 커서 그런가 봐요. 언젠가 선배님들처럼 ‘배우’라는 호칭이 붙는 게 자연스럽도록 해야죠.”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