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으로부터 55%에 이르는 ‘반덤핑관세 폭탄’을 맞은 우리 기업이 규제 부담 때문에 미국 사업을 접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반덤핑 규제가 시장 철수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강화된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국내 기업의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는 셈이다.
페로바나듐 등 합금철 제조업체인 우진산업의 한 관계자는 26일 “미국이 부과한 고율의 반덤핑관세를 감내하면서 수출을 계속할 실익이 없어 미국 수출은 잠정 중단하고 향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행히 미국 수출 규모가 크지 않아 미국 대신 유럽 등 다른 해외 시장에 더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우진산업과 코반 등 국내 업체가 수출한 페로바나듐에 대해 각각 54.69%와 3.22%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는 최종 판정을 내렸다. 페로바나듐은 철강제품용 합금이다. 특히 우진산업은 조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율의 ‘징벌적 관세’를 매겼다.★본지 3월20일자 1·2면 참조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반덤핑 규제로 수출을 포기까지 한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며 “중소기업이라서 규제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앞으로 더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2015년 하반기부터 반덤핑·반보조금 규제를 대폭 강화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먼저 징벌적 관세 부과가 늘었다. 피소업체의 조사 협조가 미진하면 기업에 불리한 모든 가용 정보(AFA·Adverse Facts Available)를 활용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에 징벌적 관세를 매긴 경우는 원심 판정 기준 2014~2015년에는 한 건도 없었는데 지난해에만 4건이 쏟아졌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징벌적 관세를 매기는 등 불합리한 처분이 많아져 한국 기업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또 수출 규모가 작은 건이나 중소기업도 가리지 않고 문제 삼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 규모가 최소 수천억원 이상이고 대기업인 경우 반덤핑 규제를 했는데 요즘에는 기업과 수출 규모를 가리지 않고 규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페로바나듐 사건은 수출 규모가 1,600만달러(약 180억원)에 불과했다. 올해 반덤핑 판정을 받은 가소제(DOTP), 인동 사건의 미국 수출도 각각 3,122만달러(약 350억원), 430만달러(약 48억원) 수준이고 합성고무 사건은 62만달러(약 7억원)의 ‘초소규모’다. 인동 사건은 봉산이라는 중소기업을 문제 삼은 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국제적인 법적 문제에 대응할 여력이 약하고 수출 규모가 작은 경우 법적 대응을 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 더 비효율적일 수 있다. 우진산업과 같은 미국 시장 포기 사례가 또 나타날 가능성이 큰 이유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수입 규제 강화로 우리 기업들이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규제 대응에 취약한 중소기업의 경우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주고 법적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