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를 만나러 갔는데, 대뜸 노래가 아닌 떡 얘기부터 나왔다. 번지수 잘못 찾은 건가. 떡장수인가, 아니면 홍보대사? 그리고 “국내에서 만들어진 떡은 다 먹어본 것 같아요.”라고 한술 더 뜬다. 농담인줄 알았는데.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24일 오후 서울 서래마을에서 만난 가수 이순정(36)은 요즘 떡 이야기만 나오면 할말이 많다. 행사장에 가면 “저기, 찰떡 지나간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인정 많은 시골 아주머니들은 직접 떡을 싸와 맛을 보라며 건네기 일쑤다. 그만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가수 이순정에겐 단순한 떡이 아니었다. 2015년 말. 16년이라는 긴 공백기간을 깨고 ‘가수’라는 이름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든 노래가 바로 ‘찰떡’(홍진영 작사ㆍ작곡)이었기 때문이다.
“’찰떡’이라는 제목을 받았을 때 울었어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한편으론 성적인 상상을 불러 일으킬 만한 요소 ‘에로틱한 노래’로 인식됐어요. 또 이 곡은 첨에는 락(rock) 버전이었는데, 제가 본능적으로 꺾어 불러서 지금의 곡이 됐어요.”
‘찰떡’은 가창력을 요구하는 노래가 아니라, 애교있는 비음을 섞어 불러야 한다.
<우린 찰떡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겠어 / 철썩철썩 붙어서 떨어지지 않겠어 / 우린 찰떡~(찰떡) / 우린 찰떡~(찰떡) / 우린 찰떡처럼 떨어지면 안돼요>
묘한 상상을 일으키고 후렴구에 반복되는 찰떡과 철썩의 절묘한 조화가 자꾸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게 된다.
16일에는 디제이 페리(Perry)의 도움을 받아 젊은 층을 대상으로 ‘찰떡’ 리믹스 버전을 내놨다.
“좀 더 젊은 친구들을 위해 다시 편곡한 거예요. 성인가요는 점잖아야 한다는 시각을 깨고, 젊은 층의 시각에 맞게 다양한 퍼포먼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요.”
물론 이전에도 이순정의 ‘찰떡’이라는 노래가 수학능력시험 시점에서는 수험생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곡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처럼 결혼식 축가로도 많이 애용되고 있을 정도다.
가수 이순정은 여전히 홀로서기 중이다. 누군가의 딸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바로 가요계의 전설 중에 한 명인 ‘김수희’다. 70년대 중반 ‘너무합니다’ 데뷔해 각종 히트곡을 선사한 ‘국민가수’. 이순정이 가요계에서 더 조심하는 이유다.
“어머니가 괜히 국민가수가 아니더라고요. 이전까지는 몰랐어요. 제가 가요계에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직접 경험해보니 알겠어요. 수 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을까. 어머니는 그것을 견뎌 내셨기 때문에 지금의 ‘김수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국민가수는 신인이나 다름없는 가수 딸에게 어떤 조언을 할까 궁금했다. 이순정은 대답은 의외였다.
“어머니는 많은 얘기(잔소리)를 아예 안해요. 구체적으로 조언을 하기보다는 행사장이나 방송국에서 ‘떨지말고 소통하라. 떠는 순간부터 관객들과 소통할 수 없다. 소리를 가르쳐 줄 수 없다. 발성이나 노래하는 것은 네 자신에게 달렸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불러라’고 말씀하시고 말아요.”
이순정은 미국에서 중ㆍ고등학교를 마치고 1999년 몰래 귀국해 가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인천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 김수희씨가 하필이면 그 클럽에 특별출연으로 오게 되면서 발각돼, 머리채를 잡혀서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때 김수희씨가 “선민(순정의 본명)아, 노래가 그렇게 하고 싶냐?”고 묻고 직접 음반을 만들어 줬다. 이순정이 20세때 ‘써니’라는 아이돌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이순정은 사실상 금수저였지만, 용돈을 받아 본적이 없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김수희씨는 이순정이 철저히 혼자의 힘으로 살기를 원하셨다. 2015년 다시 가요계에 복귀했음에도 TV다큐와 듀엣 공연한 것으로 제외하고 특별히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다. 원망도 할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딸은 그런 어머니를 하나 둘씩 이해하고 있었다.
이순정은 “제가 가수 김수희보다 행사가 더 많아요(웃음),”라며 지금은 방해나 장애물이 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이순정의 롤모델은 어머니가 아닌 가수 이미자씨다. 삶의 희로애락을 부드러운 음색과 애잔한 감성으로 부르는 모습에 특히 맘에 든다고. 이 슬픈 감성은 이순정만의 ‘페이소스’다. 어머니 김수희씨도 ‘슬픈 감성은 나보다 낫다. 애잔하고 감동을 줄 수 잇는 노래가 맞다.’고 딸 이순정을 인정했다.
가수 이순정은 여전히 여리다. 봄 새싹 같다. 그래서 이 가요계가 때론 두렵다.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럴 때마다 자신과 싸운다.
“이왕에 늦게 시작한 거 뭐라도 해야죠.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스타로 반짝 유명해지기보다는 무대에서 팬들과 함께 즐기는 가수가 되고 싶다.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는 지금이 진심 좋다.”
인터뷰 말미에 어떤 가수가 되고 싶냐구 물었다. 이순정은 “인생의 사계절을 노래하는 가수”라고 답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가수 이순정의 엄마, 김수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서경스타 안신길 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