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에 ‘돈’도 숨을 죽였다. 19대 대통령선거가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돈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달려가고 삼성전자가 200만원을 넘어 연일 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일반투자자들의 돈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로 7개월이나 앞당겨진 대선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며 돈 흐름을 정체시켰다. 증시로 유입되는 자금은 정체된 반면 은행권의 수시입출금 예금 잔액은 급증하고 있다. 또 고액 자산가들은 주식형 펀드에서 자금을 빼 수익률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5%대 중수익이 가능한 해외 부동산펀드 등의 대체투자 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경기회복과 양적완화 종료로 자금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 예상은 선진국 시장에만 적용될 뿐 아직 한국 시장으로 오지 않았다. 특히 외국인과 기관이 대형주를 중심으로 시장을 이끌며 개인 투자자들은 시장 상승에 철저하게 소외됐다.
2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월평균 고객예탁금은 21조8,901억원으로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째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코스피가 6년 만에 박스권 상단 돌파를 시도하는 등 주식시장에 봄바람이 불고 있지만 신규 유입되는 개인 자금은 늘지 않았다. 특히 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이후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고객예탁금이 감소해온 점을 고려하면 올 대선에서도 눈치 보는 돈의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기 대선 등과 겹쳐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시중 부동자금은 은행 등의 단기자금으로 몰린다. 소나기를 피하려는 심정으로 평균 이자율이 0.15%에 불과한 시중은행의 수시입출금 예금이 급증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수시입출금 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81조6,871억원에서 올 2월 말 현재 82조8,900억원으로 두달 만에 1.47%(1조2,029억원)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KB국민·KEB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수시입출금 예금 잔액(법인·MMDA 포함)은 409조9,162억원에 달한다. 이는 역대 최고치로 정국 혼란과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좀처럼 투자기회를 잡지 못한 부동자금이 사실상 ‘제로이자’에 불과한 은행 수시입출금에 꽁꽁 묶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로 시작됐던 슈퍼달러 시대도 예상보다 일찍 약화 되고 있다. 이 날 원·달러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9원80전 내린 1,112원80전에 거래를 마감했다.미국 달러화 가치는 연초대비 7.8% 가까이 하락하며 트럼프 랠리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특히 유럽과 일본이 경제에 자신감을 가진 만큼 강달러 기조가 마무리되고 약세로 추세 전환을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며 시장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