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위와 불과 1타 차, 2년 전 같은 대회에서의 역전패, 2년 반의 우승 가뭄…. 우승을 지켜낼 가능성보다 뒤집힐 이유가 더 많아 보였지만 이미림(27·NH투자증권)은 오히려 2위와 6타 차의 압승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축하 물세례를 퍼붓는 동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눈웃음을 지었다.
2014년 ‘불운한 신인’으로 불렸던 이미림이 2년5개월여 만에 다시 트로피를 들었다. 이미림은 27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즈배드의 아비아라GC(파72·6,593야드)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기아 클래식에서 최종합계 20언더파 268타로 우승했다. 지난 2014년 10월 초 중국에서 열렸던 레인우드 클래식 이후 첫 우승으로 통산 3승째다. 상금은 27만달러(약 3억원). 20언더파는 2015년 크리스티 커(미국)가 기록한 대회 최소타 우승과 타이기록이다. 당시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날 커에게 역전패,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던 이미림은 2년 전 커의 기록과 똑같은 스코어로 우승해 의미가 더 컸다. 올해 대회에서 커는 12언더파 공동 4위로 마쳤다. 한국 기업이 주최하는 이 대회에서 한국선수가 우승하기는 2010년 서희경 이후 7년 만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3승을 거두고 2014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미림은 그 해 2승을 거두고도 신인왕을 차지하지 못했다. 시즌 3승의 리디아 고(뉴질랜드)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디아 고는 현재 세계랭킹 1위다. 타이틀은 놓쳤지만 최고 무대에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딘 이미림은 그러나 이후 손목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지금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대신 손목을 덜 쓰고도 괜찮은 샷을 구사하는 요령이 생겼다. 지난해 여름 이후로 준우승 두 차례 등으로 회복세를 보인 이미림은 올 시즌 3개 대회에서 공동 8·9위와 공동 13위에 오르며 우승을 재촉한 끝에 마침내 우승 가뭄을 깨끗이 씻었다.
허미정에게 1타 앞선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이미림은 일찌감치 독주하기 시작했다. 1번홀(파4) 중거리 버디 퍼트에 이어 3번홀(파3)에서는 티샷이 짧아 물에 빠질 뻔했던 위기를 칩인 버디로 바꿔놓았다. 5번홀(파5)에서는 1타 차의 추격자 허미정이 세 번째 샷을 1m 남짓한 거리에 붙이자 바로 50㎝ 거리에 갖다놓는 묘기를 선보였다. 이 홀에서 허미정이 내리막 버디 퍼트를 놓친 반면 이미림은 성공하면서 둘의 격차는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반 9홀 중 홀수 홀에서 모두 버디를 잡는 징검다리 버디 5개를 휩쓴 이미림은 후반 들기 전 이미 2위를 5타 차로 따돌린 뒤였다. 그 이후 버디 2개를 추가한 이미림은 총 7타를 줄였고 14언더파 공동 2위 유소연, 오스틴 언스트(미국)와는 6타 차이가 났다. 기량만큼 빛난 배려도 화제였다. 마지막 홀 먼 거리 퍼트를 탭인 거리에 갖다놓은 이미림은 챔피언 퍼트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파 퍼트를 넣어 먼저 경기를 마쳤다. 동반 플레이어 허미정의 퍼트에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타수 차가 크게 벌어진) 후반에도 다른 선수를 생각하기보다 내 경기력을 발휘하는 데 집중하려 했다. (대회 최소타 우승 등) 기록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그저 우승해서 기쁠 뿐”이라는 말을 남긴 이미림은 곧바로 친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2시간 거리의 란초미라지로 떠났다. 이번주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이 열리는 곳이다. 세계 21위에서 14위로 올라선 이미림은 살아난 퍼트감을 무기로 메이저 첫 우승을 노린다.
한편 허미정은 신인 박성현과 함께 12언더파 공동 4위로 마무리했고 전인지는 마지막 홀 더블보기에 발목 잡혀 10언더파 10위로 마쳤다. 세계 1·2위 리디아 고와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은 각각 컷 탈락, 7언더파 공동 21위의 성적을 남겼다. 박인비도 21위다. 한국선수들은 올 시즌 6개 대회에서 4승을 쓸어담는 초강세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