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단독>[정부, 관세폭탄땐 WTO에 美 제소 검토] "매출 절반, 관세로 토해낼판"...국내 기업 타격 우려에 칼 빼

美 '기업에 불리한 모든 가용 정보' 남용해 부과

중기 수출 중단 사태에 철강업계도 피해 배제못해

이미 제소한 加·브라질 등과 공조땐 승소 가능성도



정부가 한국 수출품에 대해 미국이 또다시 징벌적 ‘관세 폭탄’을 부과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유력 검토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은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국내 기업의 피해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한국 기업들은 지난해에만 반덤핑 원심 판정 5건 중 4건에서 ‘징벌적 관세’를 맞았다. 업체의 조사 협력이 미진했다는 이유로 미 상무부가 ‘기업에 불리한 모든 가용 정보(AFA·Adverse Facts Available)’를 활용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AFA가 적용된 4개 사건의 평균 관세율은 43.62%에 이르렀다.

AFA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상당히 자의적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예컨대 포스코에 요청했던 자료를 보면 ‘각종 정부 지원 관련 대출 정보를 제공하라’는 식으로 무리한 것들이 많다”면서 “요청한 것 중 한두 가지만 빠져도 ‘미이행’을 이유로 징벌 수준에서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AFA는 미국이 지난 2015년 6월 관세법을 개정해 공격적으로 관세를 물릴 수 있도록 한 무역특혜연장법(TPEA)의 개정안 중 776조b항에 해당한다. 피소업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때는 고율의 세율을 부과하는데 중국의 경우 500%에 이르는 징벌 관세를 맞기도 했다.


올해도 관세 폭탄 기조가 이어져 합금철 ‘페로바나듐’ 사건에서 54.69%, 합성고무 사건에서 44.3%, 변압기 사건에서 60.81%의 징벌적 관세 판정이 났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래도 미국의 반덤핑 규제가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품목을 안 가리고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이렇게 가다가는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품목이나 기업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17일 미국으로부터 관세 폭탄을 맞은 한 중소기업이 미국 수출을 중단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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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31일(현지시간) 한국산 후판과 유정용 강관에도 고율의 관세가 매겨지면 철강업계를 중심으로 국내 수출업체들의 피해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두 사건의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두 품목 다 미국이 집중 규제하고 있는 철강 제품인데다 유정용 강관의 경우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직접 “36%의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언급한 점 등에서 고율의 관세 부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미국의 강화된 반덤핑 규제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업계에 따르면 캐나다와 브라질·터키는 미국이 AFA를 적용해 관세 폭탄을 내린 데 대해 이미 WTO에 제소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이 AFA 적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2015년 전례 없이 ‘무역특혜연장법’이라는 별도 법을 만들고 피소업체 조사 과정에서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점 등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무역특혜연장법 발효 이후 AFA를 적용할 때 미국 상무부 조사관들의 재량권이 대폭 확대됐는데 그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 다음 대응을 못 하면 징벌적 관세를 때리는 식의 사례가 많아 WTO에서 다퉈볼 만하다”고 말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에서도 미국의 AFA 남용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과 공조를 잘하면 WTO 법적 절차에서 승소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김상훈·서민준기자 ksh25th@sedaily.com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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