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현 감독이 각본에 참여한 이유로 영화 ‘시간위의 집’(감독 임대웅)을 ‘검은 사제들’ 외전이라 추측했다면 감독의 플랜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오컬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시간위의 집’은 장르 자체를 맥거핀으로 삼은 반전 영화다. 영화는 ‘스승의 은혜’, ‘무서운 이야기’ 등으로 호러 스릴러에 두각을 드러내온 임대웅 감독이 연출을 맡아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과의 협업으로 농도 짙은 스릴러 장르물을 표방한다.
28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CGV에서는 임대웅 감독, 배우 김윤진, 옥택연, 조재윤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 ‘시간위의 집’ 언론배급시사회가 진행됐다. ‘시간위의 집’은 집안에서 발생한 남편의 죽음과 아들의 실종을 겪은 가정주부 미희(김윤진)가 25년의 수감생활 후 다시 그 집으로 돌아오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그린 하우스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스릴러는 여름에 통한다’는 공식은 이제 옛말이 됐지만, 꽃내음 물씬 풍기는 4월 무렵 접하는 스릴러가 여전히 생경하긴 하다. 하지만 이 부분은 최근 극장가에서 범죄물이 강세인 한국 영화들 가운데 신선함과 독창성으로 다가올 수 있는 강점으로 통한다. 앞서 유사한 오컬트 분위기의 ‘검은 사제들’이 초겨울인 2015년 11월 개봉해 의외의 성과를 거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장르꾼’ 장재현 감독과 임대웅 감독은 영화 속 주요 공간을 ‘집’으로 설정했다. 그동안 밀폐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스릴러가 수없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나, ‘시간위의 집’은 일본 양식의 다소 이질적인 적산가옥의 독특한 구조를 틀로 삼아 미장센에 힘을 실었다. 주택 내부의 긴 복도와 다다미방, 원목 가구, 전통무늬가 가미된 창틀, 벽지, 커튼 등은 시대적 배경인 1942년, 1967년, 1992년을 거쳐 내려오며 고풍스런 감각을 풍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는 가장 익숙하고 안락하게 여겨졌던 공간인 집을 가장 끔찍한 공간으로 뒤틀어버리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미술팀이 또 하나 특별히 공들인 부분은 주인공 미희의 노인 분장에도 있다. 1992년과 2017년의 25년 세월을 넘나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우 김윤진은 장장 3시간에 걸쳐 40대에서 60대로 변하는 특수 분장을 소화한다. 이제는 특수 분장의 기술을 논하는 것 자체도 입 아플 정도로 발전한 부분인데, 하얗게 머리가 센 ‘할머니 김윤진’은 손까지 번진 검버섯과 주름으로 손색없는 외형을 자랑한다. ‘국제시장’에서 이미 할머니 연기를 한 노하우로 구부정한 허리, 떨리는 몸, 쇤 목소리까지 열연해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미 ‘세븐 데이즈’, ‘하모니’, ‘이웃사람’을 통해 다수의 모성애를 연기한 김윤진인 터라 이번 미희 역할에 기시감을 우려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 추격극과는 또 다르게 시공간을 뛰어 넘어 판타지적 설정에서 발현되는 ‘말도 안 되는’ 모성애가 한 차원 진화한 감동을 준다. 숨통 조이는 공포감이 이후 전혀 다른 결로 변질될 때 관객들은 그 여운을 곱씹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최신부 역의 옥택연은 극중 살해자로 누명을 쓴 미희를 유일하게 믿어주는 인물답게 차분하고 안정된 호흡으로 ‘검은 사제들’ 최부제(강동원)와 비견될만한 매력을 보인다. 최부제가 경쾌한 감이 있었다면, 최신부는 진중한 게 차이점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변화가 돋보이는 배우는 조재윤이다. 지금까지 주로 조력자 혹은 귀여운 악역을 맡았던 그가 ‘시간위의 집’에서는 폭력적인 미희의 남편 철중으로 등장, 매일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며 가족을 위협하는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극적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 밖에도 신들린 만신 연기의 신스틸러 박준면이 초반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크게 일조하며, 미희의 아들 효제 역을 맡은 아역배우의 집중도 높은 연기가 김윤진의 모성애로 이어지는 주제에 설득력을 가한다.
사실 미희의 공간에 속속 등장하는 ‘그들’이 자아내는 시각적 공포의 강도가 아주 세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최고의 1분’이 존재한다. 바로 청각 단 하나로 관객의 심리를 괴롭히는 ‘암전신’이다. 약 47초간의 롱테이크 암전과 함께 서라운드로 들리는 ‘그들’의 외침만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 끼치는 신 경험을 하게 된다. 임대웅 감독은 특별히 이 같은 연출을 한 이유로 “옛날에 놀이동산에서 유령의 집에 들어가 보면 지금의 극장 4DX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더라. 거기서 착안을 얻었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임 감독의 모험이 영화사에서 새로운 시도로 회자되리라 전망한다.
우리는 문득 포스터에 새겨진 제목 ‘시간위의 집’ 타이핑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여기서 미스터리의 단서가 드러나 있는 것. 또 이 영화가 가족의 달 5월까지 상영을 이어가는 것도 의미를 더할 수 있는 부분이겠다. 4월 5일 개봉.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