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KBS 드라마 ‘추노’는 장혁에게 KBS 연기대상 대상과 함께 서울드라마어워즈와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며 장혁 연기인생의 정점을 찍게 해줬지만, 이후 장혁은 어떤 연기를 하던간에 ‘추노’에서 연기한 ‘대길이’의 답습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그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하지만 영화 ‘보통사람’에서 장혁은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추노’의 ‘대길이’가 아닌 새로운 장혁만의 연기를 보여준다. 안기부 실장 ‘규남’이라는 강력한 권력을 등에 업은 악역을 연기하면서도, 캐릭터에 힘을 실어주는 대신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어린아이를 대하듯 편안하면서 소름돋는 연기로 새로운 연기 스타일을 선보인다.
“‘보통사람’에 출연한 계기는 단순해요. 손현주 형님하고 한 번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어서, 요즘 손현주 형님 뭐하시냐 했더니 ‘보통사람’이란 영화를 준비하신다기에 시나리오를 한 번 보자고 했죠. 마침 저도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같은 캐릭터를 한 번 연기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캐릭터여서 흔쾌히 하고 싶다고 했죠.”
“감독님이 저에게 안타고니스트로서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가 거쳐가는 거대한 벽이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찍어누르고 강압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사실 안기부 실장이나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지우고 순수하게 ‘규남’의 말투만 보면 애들한테 하는 소리 같아요. 사실 제가 제 애들한테 하는 말투기도 해요. 그 말투에 시대배경을 입히면 강압적이고 무서운 말투가 되는 거죠.”
‘보통사람’에서 선보인 장혁의 연기는 장혁이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고민해온 연기 스타일이었다. 그 역시 ‘대길이’라는 캐릭터가 ‘장혁’이라는 배우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음을 알고 있기에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혁이 ‘대길이’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의도적으로 ‘보통사람’을 선택한 것은 또한 아니었다.
“어떤 배우의 색이 하나밖에 없다고 하면 다양성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다양성을 위해 굳이 그것을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추노’의 ‘대길이’는 ‘추노’의 거친 느낌을 살려내는 연기가 중요했고, ‘보이스’의 ‘무진혁’도 그런 점에서는 ‘대길이’와 같은 선상에 있어요. 그래서 내가 잘 하는 ‘대길이’ 연기를 굳이 ‘무진혁’을 연기하기 위해 포기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런데 시청률이 안 나와서 다들 이야기를 안 하시지만 ‘뷰티풀 마인드’의 연기도 사실 ‘대길이’와는 전혀 다르거든요. 또 ‘보통사람’의 ‘규남’도 ‘대길이’처럼 연기할 필요가 없는 캐릭터에요. 그렇다면 제가 잘 하는 부분이 ‘대길이’라면 ‘대길이’와 비슷한 캐릭터는 ‘대길이’처럼 연기를 하고, 그것이 안 어울리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아직도 여전히 젊은 이미지지만 장혁의 나이도 어느새 40대 초반에 접어들었고, 장혁이 연기를 시작한지도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관객들은 장혁이라고 하면 ‘화산고’나 ‘명랑소녀 성공기’, ‘추노’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관객들의 왜곡된 시선 속에서도 장혁은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으며 배우로서 발전을 해왔다.
“20대때는 빨리 지금의 나이가 되고 싶었어요. 20대 초에 찍은 ‘화산고’ 현장에서 제가 의자에 ‘열정개척장혁’이라고 썼어요. 그 땐 창피한 것도 몰라요. 아직 연기를 잘 못하지만 청춘의 열정으로 개척해보겠다. 근데 이런 멋진 말을 하고 싶어도 나이가 어리니 어울리지가 않아요. 그래서 빨리 그런 말들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고 싶었죠. 막상 40대가 되고나니 그 때는 왜 그랬을까 싶지만요.”
“연기를 하면서 지금까지 많은 벽을 만났어요. 한 번도 쉽게 흘러간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비슷한 부분이라고 해도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할수록 연습실에서 땀도 많이 흘렸고. 그래도 제 능력이 부족해 표현하지 못한 제 자신을 보고 답답해한 적도 많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뭔가 장혁이라는 배우가 내딛고 가야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서경스타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