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유전자특허와 정보독점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



유전자 검사를 받고 유방암 예방을 위해 양쪽 유방을 절제한 안젤리나 졸리로 인해 화제가 된 ‘브라카(BRCA) 유전자’는 유전자 관련 특허 분야에서 세계적 판례로 꼽힌다.

BRCA 유전자는 BRCA1과 BRCA2 두 개로 구성되는데 세포 안에서 잘못된 DNA를 고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BRCA 유전자에 자체 돌연변이가 일어나 기능을 상실하면 유방암 발생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1994년 미국 국립보건원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미리어드 제네틱스’라는 회사는 유타대학교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이 유전자들을 최초로 발견해 분리해 냈다. 1996년 BRCA 유전자 서열분석 특허를 받고 BRCA 염기서열 분석 임상 수행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확보했다.

그러나 2009년 미국의 한 인권보호단체가 이 특허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013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인체의 세포 안에 있는 DNA나 염기서열은 자연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훌륭한 발견이라 해도 특허를 인정할 수 없다’며 특허 무효판결을 내렸다. 미리어드 제네틱스의 특허권 주장이 망원경으로 달과 행성을 가장 먼저 본 뒤 달과 행성에 대한 특허권을 주장한 것과 같다고 본 것이다.


사람들은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많은 회사들이 너도나도 BRCA 검사를 제공한다고 나서게 되면서 미리어드 제네틱스의 독점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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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석 달 동안 미리어드 제네틱스의 매출은 오히려 전 분기보다 50% 이상 증가한 2억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독점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독점적 지위가 공고해진 것이다.

그 이유는 미리어드 제네틱스가 17년 동안 수백만 명의 유방암 환자 또는 그 가족의 BRCA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데이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BRCA 유전자에는 10만 쌍 정도의 염기 중에 수백 가지의 변이가 존재한다. 이 수백 가지 변이 중 어떤 변이가 유방암이나 난소암을 일으키는지, 또 그 가능성과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이 진짜로 중요한 것이다.

오랜 기간 쌓인 수백만 개의 유전자 분석 결과와 의료 정보 데이터의 융합이 특허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미리어드 제네틱스의 시장독점을 가능케 한 것이다.

최근 DNA 분석기술의 발달로 인간 전장 유전체 분석이 1,000달러에 가능해졌다. 몇 년 안에 100달러도 가능할 듯 하다. 미리어드 제네틱스의 사례는 대규모 유전체 분석 데이터에 임상데이터와 생활습관 데이터가 융합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인공지능과 딥러닝 등의 기법을 개발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준다.

유전자 특허가 사라진 시대, 이제는 통합된 유전자 정보 선점이 중요한 시대다.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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