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시인 최영미 "물위 오른 '세월호 상처' 수습, 카타르시스 느끼는 날 오기를..."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개정판 내

한국 현대사 속에 버려진 한 가족의 흉터 극복 그려

2005년 출간된 책이지만 2017년의 상황과도 맞닿아



시인 최영미(56·사진)의 12년 전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문학동네 펴냄)가 절판됐다가 새 옷을 입고 나왔다. 3년만에 진도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세월호가 목포로 향할 채비를 하던 3월의 서른번째 날이었다. 신기하게도 2005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는 마치 2017년을 향해 읊조리는 듯한 대목들이 눈에 띈다. 가령 이 책의 16쪽, “기억은 곧 사랑이다. 사랑하면 기억한다” “과거는 한꺼번에 복원되지 않는다. 서서히 현재의 수면 위로 겹쳐서 떠오른다” 같은 구절들이다. 한국 현대사 속에 벼려진 한 가족의 흉터,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이 소설은 큰 틀에선 지금의 세월호 사태와 결을 같이 한다. 그러나 예상이라도 한 듯 개정판을 낸 그는 “그저 숙제처럼 언젠가는 다시 내야지 하던 책을 때맞춰 낸 것뿐”이라며 겸손을 표했다. 첫 장편소설을 다시 펴낸 시인 최영미를 요즘 그가 서양미술사를 강의하는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만났다.



소설 ‘흉터와 무늬’에 대해 최영미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소설의 주인공 하경이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언니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한 것, 장례식을 치르지 못한 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며 “결국 언니를 묻는 과정에서 하경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듯 배를 건져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흉터와 무늬’는 주인공 하경이 어린 시절 죽은 줄로 알았던 언니에 대한 기억을 되찾은 후 언니가 어떤 과정으로 죽음에 이르렀는지 추적해나가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책이 나온지 12년이나 흘렀지만 등단 전부터 남겨뒀던 문장의 파편들이 낡은 플로피 디스켓 속에, 또 원고지에 남아있었다. 최영미는 지난 겨울부터 이를 복원해 내용을 보강했다.


그의 첫 장편소설만큼이나 문학인 최영미는 오랜 세월 은둔했다. 은둔이 길어지니 고립이 되고 망각이 됐다. 문단 활동도 활발하지 않았고 다른 문인들처럼 한 출판사의 관리를 꾸준히 받지 못했다. 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를 읽지 않는 이들마저 알 정도로 유명한 시집이지만 그 덕에 첫 시집에 갇혀 근 30년을 살았다.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최영미는 첫 시집이 너무 성공한 탓에 문학 외적인 풍문에 휩싸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행한 시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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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사태에 분노했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이름이 없는 현실에 부끄러움도 느꼈다. 최영미는 “내가 얼마나 경쟁력 없는 작가가 됐으면”하고 탄식하더니 “이제는 내 목소리도 좀 내고 살아야겠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최 시인이 저소득층을 위한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 됐다는 소식은 출판계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첫 시집을 무려 52쇄를 찍은 시인의 사연으로는 믿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러나 최영미는 오히려 자신의 생활고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 일을 겪고 나서 사람들이 얼마나 풍요롭게 사는지 알게 됐어요. 내가 더 놀란 건 그렇게 풍요로운데도 1만원도 안 하는 시집 한 권 사보지 않는다는 현실이죠. 그거 꼭 써줘요. 나 충격받았다고.” 수다쟁이 소녀 같던 최영미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해졌다.

그의 소설 속에는 “감추고 싶었던 흉터가 지금은 뭇 얼굴들 속에서 번쩍, 나를 알아보는 무늬가 되었다. 어디에서건 나를 드러내는 서명처럼”이라는 표현이 있다. 최영미의 흉터는 무늬가 되었을까. “우리 조카가 10년 전에 그러더라고요. 줄기세포로 나랑 똑 같은 사람을 만들면 나랑 복제인간은 어떻게 구분하느냐 묻더니. 자기가 답을 해요. 흉터는 복제 못하지 않느냐고. 그때 무릎을 딱 쳤죠. 흉터가 있어서 나구나.”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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