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건설에서 건축으로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효율적 건설·토목 중심 개발서

서울역 고가, 공원으로 변신 등

건축 통해 사람 중심 공간 탈바꿈

서울 곳곳 아름다운 장소 많아지길





얼마 전 어느 학부모가 자녀가 수학을 잘하니 건축학과를 선택하면 어떻겠느냐고 질문했다. 필자는 “건축가는 사칙연산만 제대로 하면 되고, 그 이상의 고등수학은 구조역학 엔지니어가 될 게 아니라면 필요 없다”고 답했다. 건축가는 더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건축학과에서는 단순히 아름다운 건물을 디자인하는 능력만을 교육하지 않는다. 5년 동안 건축설계·미술·철학역사·사회·정치·건축법·구조역학·설비·환경·경제경영 등을 공부해야 하며 1990년대 이후부터는 여러 컴퓨터 프로그램도 숙달해야 한다. 건축학과에서 이렇게 다방면의 공부를 하는 것은 건축가가 여러 분야를 조율하고 종합적 사고를 통해 합리적인 해답을 찾아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주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더 복잡해지고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한 종합적인 건축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건축가에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는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건축 문화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건축물 착공식의 귀빈석에 건축가가 앉을 자리가 없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마나 바르셀로나와는 다르게 우리나라에 건축물과 도시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드물다는 사실도 우리 건축 문화의 수준을 보여준다. 물려받은 건축 유산이 거의 없다 보니 건축 문화가 축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900차례가 넘는 크고 작은 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주요 건축물이 소실돼 국민들은 제대로 된 건축 작품을 보면서 자라지 못했다. 유교 중심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는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건축물을 남기려는 노력보다는 대충 만든 건축물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고 보는 가치관이 만들어지고 주입됐다. 한국전쟁 후에는 폐허에서 일단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건축’보다는 ‘건설’을 해왔다. 지난 30년간은 건축이 ‘부동산 재테크’였을 뿐이다.

관련기사



다행히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의 건축 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건설보다는 건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량으로 찍어낸 브랜드 아파트에 살기보다는 건축가를 고용해 작은 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이 생겨났고, 쇼핑몰보다는 아름다운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서울시의 정책에서도 많은 변화가 이뤄져 왔다. 과거 토목공사 중심의 개발을 했다면 지금은 건축적 의미가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더 많은 도로를 만들어 이동의 속도를 높이려고 했던 도시계획의 목적도 사람 중심의 장소를 만들어 사람을 머무르게 하려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서울시는 자동차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 도시의 많은 부분들이 제대로 된 건축가의 조율을 거쳐 재생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는 경제적인 요인도 한몫을 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먹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지만 걷는 사람은 옷도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는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의 속도를 늦추려는 노력이 이뤄지는 것이다. 과거의 서울이 자동차회사와 대형 유통회사에만 좋은 공간구조였다면 오늘날은 지역별로 차이를 줄이고 개성을 지닌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버려졌던 마포 석유비축기지를 개조해서 미술관을 만들고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행자를 위한 공원으로 바꾸고 있다. 세운상가와 노들섬도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올가을에는 전 세계 건축인들이 모이는 행사인 ‘세계건축연맹(UIA) 2017 서울대회’와 ‘서울건축비엔날레’도 서울에서 열린다. 이러한 노력은 서울을 더욱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들고 기억될 장소들로 채울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아름다운 장소들이 서울에 만들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 태그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