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기울어진 정부…그래서 ‘중기부’다

이규진 성장기업부장

법안제출권·의결권 없는 중기청

산업부 반대에 필요한 입법 불가능

정책조정도 못해 중복지원 일상화

독립적이고 대등한 중기부 신설을

이규진 성장기업부 부장.


지난해 9월29일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 국정감사장. 더불어민주당의 박재호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백화점 출장세일은 해당 지역에 대형마트가 하나 더 들어오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고 지역 나들가게도 피해를 당합니다.”


답변에 나선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단호했다.

“100% 공감합니다. 해당 지자체와 상의해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논란이 된 것은 롯데백화점·현대백화점·한화갤러리아의 출장세일이었다. 이들 백화점은 경기도·부산·인천에서 고가 수입제품 외에 1만∼2만원대 의류, 어묵 등 지역 맛집 상품, 군고구마·호떡 등을 팔았다. 백화점이 만든 장터였다. 일부 업체는 행사 기간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이를 보다 못한 박 의원이 국정감사 때 출장세일의 횡포를 문제 삼았고, 이에 주 청장이 골목상권 침해를 막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백화점의 출장세일은 ‘허가받은 영업장소에서 판매를 해야 한다’는 유통법 위반 소지가 컸다.

국감 직후 중기청은 기민했다. 관련 부서는 해당 백화점들에 출장세일 자제를 촉구했다. 그런데 다음날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중기청의 상급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중기청에 경고공문을 날린 것이다. 왜 백화점 출장세일을 문제 삼느냐는 것.


산업부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산업부는 정부 내에서 대형마트 규제를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다. 세계무역기구(WTO) 위반 가능성과 영업자유의 원칙 위배가 명분이지만, 산업부의 팔은 과도하게 대기업 쪽으로 굽어 있는 게 사실이다. 경사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경제 민주화’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이다. 그러나 차관급 부처이자 산업부의 외청인 중기청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 대한민국 행정부의 바닥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차관급인 중기청장은 국무회의 배석만 한다. 법안을 만드는 ‘법률안 제출권’과 국무회의 ‘의결권’이 없다. 반면 산업부 장관은 법안을 제출하고 의결을 한다. 이런 산업부와 중기청이 첨예한 사안을 놓고 대립할 경우 결과는 자명하다.

이런 구조가 수십년 고착화되다 보니 산업부 일개 과장이 중기청장이 직을 걸고 출장세일을 막겠다고 하는데, 그만하라고 경고장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행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면서 입법부인 국회가 대신 경제민주화 입법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박 의원 역시 산업부의 훼방에 출장세일 방지를 담은 유통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차관급 중기청의 어려움은 비단 법안 제출을 못하는 데만 있지 않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통합적인 정책이 필요한데도 정책조정을 하지 못해 각 부처마다 중복 사업이 난립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실제로 중기청은 지난 2011년부터 대학의 창업 거점화를 위해 40개의 ‘창업선도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모방한 미래창조과학부는 올해부터 과학기술 기반의 ‘창업중심대학’을 선정 중이다. 미래부와 산업부가 지난해 각각 1,500억원과 3,000억원의 중소기업 상용화 연구개발(R&D) 지원을 한 것 역시 중기청의 기존 업무와 정확히 겹친다.

장미 대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중소기업부 설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거창하게 4차 산업혁명을 앞세우고 중소·벤처기업을 키우기 위해, 또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기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력 후보인 문재인, 안철수 역시 각각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중소기업부를 공약했다. 그러나 기울어진 행정부의 구조적 병폐를 직시하고 이를 혁파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많지 않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려면 경사진 행정부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미국이 대통령 직속 독립기관으로 장관급인 중소기업처를 두고 있고, 독일·영국·프랑스가 대등하고 독립적 지위를 누리는 중소기업부처를 두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sky@sedaily.com

이규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