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리아 폭격을 계기로 한때 ‘브로맨스’로까지 불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러시아 외교부가 양국 관계를 “냉전 종식 이후 최악”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11일(현지시간)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러시아를 찾았지만 틀어진 양국 관계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시리아 공군기지 폭격이) 미국 대표단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의 화학무기를 발견했다는 발언을 하고 뒤이어 이라크에 대한 침공이 이뤄졌던 지난 2003년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꼬집었다. 당시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명분 삼아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결국 물증을 찾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이어 “(이라크 전쟁은) 국가 파괴와 테러 위협 증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출현이라는 결과를 낳았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며 “미국과 유럽이 관계 개선을 위해 러시아와 시리아를 ‘공공의 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행정부도 연일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이날 미 정보당국의 분석을 담은 4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방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CNN에 “러시아가 거기(시리아)서 발생한 일을 감추려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러시아가 화학무기 사용 은폐 시도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러시아가 화학무기 공격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러시아 공군이 공습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몰려드는 병원 위를 정찰하고 폭격을 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미 대통령은 몬테네그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안에 공식 서명함으로써 양국의 갈등을 부채질했다. 러시아는 인구 65만명의 소국이지만 서방과 러시아가 부딪히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발칸반도에 자리 잡은 몬테네그로의 나토 가입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양국의 대립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이날부터 이틀간 러시아를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 등과 만날 예정이지만 양국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러시아 외무부는 틸러슨 장관과 라브로프 장관의 회동을 앞두고 성명을 발표해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냉전 종식 이후 최악”이라며 “미국 정부의 잘못이 만들어낸 자극적인 요소들이 줄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 역시 전날 푸틴 대통령이 틸러슨 장관과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히며 미국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틸러슨 장관도 이날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외무장관회의를 마친 후 러시아로 출발하기에 앞서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과 보조를 맞출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과 이란·헤즈볼라 무장세력을 끌어안을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며 러시아에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