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강산도 변하는 10년, 대선주자 얼굴은? ‘안희정vs이재명’편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울경제썸에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대선주자 주요 5인들의 10년 간 사진 데이터를 모아 직접 비교해봤다.

▶‘문재인vs안철수’편 바로보기▶‘홍준표vs심상정vs유승민’편 바로보기앞서 소개한 기사를 통해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이목을 받았다. 특히 포털사이트 대선 특집 페이지 주요 뉴스에 랭크되면서 폭발적인 댓글이 주를 이었다. “문재인 후보는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외모에 중후함과 품격이 더해졌다”, “안철수 후보는 그동안 고생이 묻어나듯 짧은 기간 얼굴이 많이도 변했다”는 식이다.


일부에서는 ‘외모로 대통령 뽑는 거냐’며 질책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해외 언론도 유명 정치인의 얼굴 변화와 정치적 성과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종종 분석 기사를 내놓는다. 이를 분석한 논문도 여러 편 나와 있다.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추가적으로 번외편을 준비했다. 경선 직전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치솟으며 한때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후보와 이재명 후보를 비교해봤다.

10년간 사진들로 비교해보는 대선주자들의 얼굴 변화


#6. ‘충남 엑소’ 안희정 충남도지사



196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안희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매우 좋아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정희(正熙)를 뒤집어 희정(熙正)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는 유년기 시절부터 학생운동에 앞장섰으며 대학 시절에는 1988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수감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89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측근인 김덕룡 국회의원실에서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0년 3당 합당(민주정의당과 제2야당 통일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출범)에 반발하면서 주축이었던 김영삼과 결별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게 된다.

이후 2001년 노무현 전 의원의 보좌관을 맡으면서 다시 정계로 복귀했다. 한때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함께 좌희정 & 우광재라고 불릴 만큼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혔다. 하지만 2002년 대선 관련 선거법 위반으로 노무현 정부 5년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됐다. 하지만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된데 이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제36대 충남도지사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제2의 노무현’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가 거세지자 19대 대선 주자로 나섰으나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2위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10년간의 얼굴 변천사로 본 그의 인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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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가람기자, 사진=연합뉴스/그래픽=정가람기자, 사진=연합뉴스




안 지사는 여야 동년배 정치인들 중에서 돋보이는 외모로 일명 ‘충남 엑소’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10년 전인 2007년 당시 안희정은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으로 일했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충남엑소의 세련된 이미지보다는 동네 흔한 아저씨의 느낌이 난다. 살짝 품이 무채색 계열의 큰 정장을 입고 꾸미지 않은 헤어스타일이다.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제36대 충남도지사에 당선된 이후 스타일이 진화했다. 지금과 흡사하게 2:8의 차분한 헤어스타일, 네이비 계열의 정장 혹은 눈에 띄는 넥타이 코디 그리고 화사한 미소를 장착해 꽃중년으로 거듭났다. 2017년 19대 대선레이스에 뛰어든 그는 젊은 세대의 트랜드에 맞게 앞머리를 올려 이마를 드러내고 정장 대신 터틀넥을 입으며 2030 세대와 소통하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캠프 관계자는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를 살리는 차원에서 오래된 양복들을 몸에 딱 맞게 수선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또한 헤어스타일은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연출해왔다. 젊은 층과 여성을 만날 때는 앞머리를 올려 ‘깐 희정’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중장년층을 만나면 차분하게 손질해 하기도 했다.

#7.‘사이다’ 이재명 성남시장



1964년생(53세). 변호사이자 지역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2010년 두 번째 도전한 성남시장 선거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현재 재선 성남시장이다. 경북 안동의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중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그러나 사법고시까지 합격해 변호사가 됐고 시장까지 된다. 2010년 이 시장은 성남시장 취임과 동시에 부채 총 7,285억원을 상환하기 어렵다며 지자체 최초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한 뒤 3년 6개월 만에 빚을 다 갚았다.

이후 2015년부터는 청년배당·공공산후조리원·산후조리지원 등 과감한 복지 정책을 시도했다. 시민 10명 중 8명(79.6%, 2015년)이 그의 시정운영에 만족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촛불집회에 전면 나서면서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지지율이 크게 올랐다. 그 추세로 19대 대선 경선에 나섰으나 3위에 머물렀다. 외신에서는 한때 이 시장을 두고 ‘한국의 트럼프’라 칭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버니 샌더스’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10년간의 얼굴 변천사로 본 그의 인생사



/그래픽=정가람기자, 사진=연합뉴스/그래픽=정가람기자, 사진=연합뉴스




그의 얼굴은 지난 10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마에는 일자 주름이 깊게 파이고 팔자 주름도 움푹 들어갔다. 미간과 턱 주변의 잔주름, 검버섯도 감추기 힘들다. 그러나 눈매는 날카로워졌다. 그는 넥타이보다는 단추 한두 개 정도는 푼 셔츠 차림으로 자주 등장했다. 대선주자로 본격 뛰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장에 컨버스 단화를 늘 신고 다녔다. 발로 뛰는 정치인임을 스스로 내세운 것이다.

/강신우·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

정가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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