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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과장’ 동하, 멍석이 되는데 걸린 시간 13년…애드리브는 서막일 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중학교 1학년짜리 아이가 영화관에서 심장의 떨림을 느낀 지 13년 만에 대중에게 제대로 각인됐다. ‘김과장’ 박명석의 성공은 결코 운이 아니다. ‘나는 언젠가 배우가 될 거다’라는 생각으로 한 길만을 걸어온 덕분이다. 그동안 쌓인 연기에 임하는 태도, 테크닉, 열정이 박명석을 만들었다. 사랑받는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동하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12일 KBS2 수목드라마 ‘김과장’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차기작 준비에 한창인 동하를 서울경제스타 사무실에서 만났다. 화창한 날씨처럼 화사한 개나리 니트를 입고 등장한 그는 개운한 표정으로 질문에 하나 하나 답변을 이어갔다.




배우 동하가 서경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배우 동하가 서경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


“아직은 얼떨떨해요. 음식점 가면 사진 찍어달라고 하시는 분들 있고 사인해 달라는 분들도 있어요. 행복하죠. 기분이 좋더라고요. 혹시나 악성댓글이 있을까봐 저에 대한 반응을 확인 못 했거든요.”

동하가 출연한 ‘김과장’은 돈에 대한 천부적인 촉을 가진 ‘삥땅 전문 경리과장’ 김성룡(남궁민 분)이 더 큰 한탕을 위해 TQ그룹에 입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정과 불합리와 싸우며 무너져가는 회사를 살리는 오피스 코미디 드라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 18.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및 마지막 회 시청률 17.2%를 기록, 수목드라마 동시간대 1위로 지난해 30일 막을 내렸다.

동하는 극 중 TQ그룹 박현도(박영규 분) 회장의 아들인 박명석 역을 맡았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재벌 2세이지만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어 김성룡으로부터 ‘멍석’이라는 별명을 얻는 인물이다. 초반의 박명석은 그야말로 안하무인. 철도 없고 위아래도 없다. 경리부 사람들을 괴롭히다 김과장에게 호되게 당하기도 한다. 동하는 촬영 전 대본을 보며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했다.

“처음에는 많이 걱정했어요. 이 역을 하면 욕을 먹겠구나 생각하고 시작한 작품이에요. 그런데 나중에 개과천선을 하잖아요. 그게 어색하지 않도록 귀여운 면을 첨가했어요. 다행히 좋게 봐주셨죠. 애교는 제 아이디어에요. 목소리를 살짝 얇게 내거나 톤을 높이면서 말했어요. 제스처나 액션도 조금 더 귀엽게 했고요.”

박명석이라는 인물이 많은 사랑을 받은 데에는 동하의 캐릭터 소화력이 한 몫 했다. 점차 김과장의 조력자가 되는 것도 매력적이었지만, 재수 없는데 미워할 수도 없는 깐죽거림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뺏었다. 동하가 끼를 발휘한 데에는 자유로운 현장 분위기 덕도 있었다.

“애드리브는 선배님들 하시는 것만큼 했습니다. 그래도 되는 현장이라고 느껴졌어요. 선배님들이 선후배가 아닌 형제나 부자지간처럼 대해주셨어요. 벽을 허물어주시니까 이것저것 해보고 싶다고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었죠. 감독님께서도 미리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씀드리면 리허설 때 해보도록 기회를 주셨어요. 리허설 때 안했던 것을 아끼고 아끼다가 촬영 들어가서하기도 했어요. 다들 예상하지 못했던 거니까 빵빵 터지고, 저는 뿌듯하고 그랬죠.”

배우 동하가 서경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배우 동하가 서경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


덕분에 터졌다. 그의 탄자니아어 애드리브는 역대급 장면으로 남았다. 100% 동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그에게 날개를 달았다. 실시간 검색어까지 오르내린 탄자니아어 애드리브는 사실 영어를 회피하기 위한 차선책이었다. 동하는 ‘배움이 적어서 영어 대사가 힘들었다’는 겸손한 이유를 붙였다.


“대본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제가 추가했어요. 노림수는 아니고 사실 회피하려고 했던 거예요. 탄자니아인이랑 무려 아프리카식 영어로 아주 유창하게 대화를 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끙끙 앓다가 어차피 탄자니아인과 얘기하는 거라면 탄자니아어로 해보자 생각했죠. 유투브로 검색해서 연습하고 바로 촬영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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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공유하는 분위기가 와 닿았다. ‘김과장’의 흥행 요인에 즐거운 현장 분위기를 제일 처음으로 꼽던 동하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촬영 환경이 여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미니시리즈 특성상 시간에 쫓겼고,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동하는 베테랑이었다.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캐릭터를 체화시킬 줄 아는 배우였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신은 항상 즐거웠습니다. 사실 당일에 대본을 받고 촬영하는 건 미니시리즈 현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에요. 차라리 그날 받아서 그날 촬영하면 다행이죠. 대본을 딱 한 번 읽고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도 있어요. 쪽대본을 받고 5분 뒤에 슛 들어갈 테니 외우라고 하면 당황스럽죠. 제가 암기가 약해요. 외우는 거라고 생각하면 더 안 되더라고요. 온전히 그 캐릭터가 돼야 해요. 대사를 받았다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가 대신 표현해준 거라고 생각하면 수월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파이(π, 원주율)같은 숫자 있잖아요. 똑같은 A4 용지 한 장 분량이어도 그런 스토리가 없는 숫자를 외우는 것과 내가 캐릭터로서 하고 싶은 말의 뜻을 정확히 알고 외우는 것은 속도 차이가 어마어마하죠.”

이런 노하우가 있어서일까. 의외로 특별한 연기 연습은 하지 않는단다. 대신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오래 분석한다고. 앞서 말한 것처럼 맡은 역할 자체가 돼야하기 때문에 분석하는데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린다. 배우 동하라는 옷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박명석의 옷을 입는 과정은 정말 어렵다. 때문에 작품이 끝나고 다른 작품을 하는데 최소 한 달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이미 그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고 나를 표현하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 그것이 동하의 연기 신조다.

동하라는 배우를 쌓아올리기까지 숱한 시간들이 존재했다.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학교 1학년 시절의 그를 만나게 된다. 영화관에서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보던 날, 동하의 가슴에 배우라는 씨앗이 심어졌다. 류승범이 연기를 하는데 모든 관객들이 자기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고. 저 배우처럼 내가 어떤 감정을 표현했을 때 관객들이 같이 웃고 울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고, 연기자란 정말 멋있는 직업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단다.

배우 동하가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서 서경스타와 인터뷰를 가졌다./사진=조은정 기자배우 동하가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서 서경스타와 인터뷰를 가졌다./사진=조은정 기자


“연기 공부를 하는 과정이 5년 정도 있었어요. 학원에도 다녀봤는데 연기에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년 배운 후부터는 가르치는 분들을 따르기보다는 저의 소신껏 하게 됐어요. 저만의 방식대로 분석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 거고요. 그렇게 방송을 하는데 너무 떨려서 앞이 잘 안 보이는 거예요.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게 다였어요.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요.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연극 무대로 갔어요. 소극장 무대에서 3~4년 정도 있다가 방송으로 다시 넘어오게 된지 4~5년 정도 됐네요.”

드라마 ‘쓰리 데이즈’(2014), ‘기분 좋은 날’(2014), ‘라스트’(2015), ‘뷰티풀 마인드’(2016) 등 지난 3년 사이에 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영화 ‘나의 절친 악당들’(2015)에서는 배우의 길을 열어준 류승범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물론, 아직 부족하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보고 싶다. 선배들의 연기력도 부럽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경험이라고. 더욱 많은 역할을 해보고 싶은 그가 현재 가장 희망하는 것은 ‘센 역할’이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보다는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역할이요. 지금은 센 역할이 그렇네요. 예를 들자면, 일반인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거요. 연쇄살인범이나 혹은 초능력자처럼 비현실적인 역할이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에 있는 역할을 좋아해요. 영화 자체는 SF보다는 액션 느와르를 많이 보는데 역할은 그런 게 좋더라고요. 사람들이 정답을 모르니까요. 명시돼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설정하는 게 정답이잖아요. 그러니 제 상상력을 풍부하게 펼쳐 보이고 싶어요. 재미있을 것 같죠.”

도전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배우, 연기 하며 전율을 느낀다는 배우 동하는 또 한 번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준비를 마쳤다. 다음 주부터 오는 5월 방송되는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 촬영에 돌입한다. ‘김과장’에서 열연한 덕분에 제안 받게 됐다고. 연기에 대한 올곧고 신중한 태도로 더욱 성장할 동하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가, 어떤 선배가 되고 싶은지 들었다.

“우선 선배로서는 남궁민 선배님처럼 후배와 선배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허물어주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해요. 그리고 배우가 곧 연기자잖아요. 연기를 하는 사람이니 연기를 잘해야겠죠. 연기가 좋아서 시작한 거지만 대중들이 제 이름을 들었을 때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정말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다음 작품도 본방사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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