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정말이지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석탄 실은 배가 안 들어올 수 있다는데 그러면 발전소 보일러를 꺼야 하고 결국 대한민국 전체가 멈추게 되는 위급한 상황이었죠.”
국내 화력발전소의 한 고위관계자가 지난 2011년 경험한 아찔한 상황을 회상하며 건넨 얘기다.
상황은 이렇다. 2011년 1월, 호주 퀸즐랜드주에 두 달 동안 비가 쏟아져 내렸다. 계속되는 폭우로 퀸즐랜드주 도시의 기능이 마비됐다. 문제는 호주에 발생한 자연재해로 그친 것이 아니라 불똥이 한국에 튀었다는 것이다.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은 퀸즐랜드의 노천 광산들이 홍수로 물에 잠기면서 발전용 석탄 수입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국내 전력 생산의 40%를 차지하는 화력발전소 가운데 한 곳이라도 멈추면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당시 한국은 호주에서 발전용 석탄의 35%를 수입하고 있어 만약 석탄 수입이 끊겼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어둠으로 뒤덮여 암흑천지가 됐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 빈국이다. 국내 사용량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안보 차원에서 에너지 자원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다. 세계에너지협의회(WEC)에서 발표한 ‘에너지 3중고(energy trilemma) 지수 2016’을 보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 수준은 C등급, 전체 순위로는 72위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의 실정으로 해외자원개발이 좌초 위기에 빠지면서 자원외교는 모든 정책의 후순위로 밀렸다. 정부에서 해외자원개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해외자원개발 신규 사업 수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71개로 가장 많았으나 2015년 10개로 쪼그라들었다. 올해는 4월 말 현재 신규 사업이 한 건도 없다. 사실상 정부가 주도해온 해외자원개발 사업에서 모두 철수한 상황이다.
반면 일본과 중국은 저유가로 가격이 떨어진 요즘이 해외자원 확보의 적기라며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일본 전체 기업의 해외자원개발 투자액은 2010년 4조엔에서 2016년 12조엔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세계 원자재 분야 인수합병(M&A) 거래에서 중국의 비중은 12%로 2014년 7%에서 계속 높아지고 있다.
물론 해외자원개발 투자가 위축된 데는 전 세계적 경기 둔화로 원자재 수요가 급감한 영향도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이전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감사에 나서는 등 책임 추궁이 이어진 것이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위축을 불러온 큰 요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해외자원개발은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 단시간에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원자재가격이 떨어지고 세계 시장이 위축된 지금이야말로 ‘싼값’에 해외자원을 적극적으로 매수할 적기라는 지적을 귀담아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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