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더 많은 ‘수조’가 출렁거려야 한다

임석훈 논설위원

인터넷銀, 경쟁 통한 금융혁신 촉발

산업 전반의 규제·기득권 무너뜨려

세계 시장 주도할 '메기' 육성해야

목요일아침에 칼럼 사진




#.지난달 27일 씨티은행은 차세대 소비자금융전략을 발표했다. 디지털 서비스를 강화하고 지점을 대폭 축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서울에 있는 지점 49개를 13개로, 지방지점 56개는 8개로 통합하기로 했다. 한국 내 지점 80%를 폐쇄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많은 금융 소비자들이 모바일 등 디지털 채널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오프라인 영업점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통폐합되는 지점 직원을 기존의 콜센터와 유사한 전화·디지털 응대 업무로 재배치하기로 했다.

#. 딱 일주일 전인 13일 개인 간 대출금융(P2P)업체 ‘8퍼센트’가 최저금리 보상제를 시작했다. 자기 회사에서 대출받은 고객이 다른 금융회사에서 0.01%포인트라도 싼 금리로 대출을 받으면 보상금 10만원과 미니 금수저(12만원 상당)를 지급하는 파격 이벤트에 돌입했다. 인터넷몰 등에서 유행하던 최저가보상제가 금융시장에 등장한 셈이다. 8퍼센트는 신용등급 1~7등급을 대상으로 다음달 31일까지 이뤄진 대출 건에 대해 모두 보상제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 신한은행은 다음달부터 인터넷뱅킹을 할 때 일일이 깔아야 했던 액티브X 등 각종 보안프로그램 설치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액티브X 설치는 고객 불편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현 정부 들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으나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이달 초 인터넷뱅킹 메뉴 가운데 원하는 메뉴를 골라 편집할 수 있도록 하고, 고객별 추천상품 등의 메뉴를 신설했다. 기업은행 역시 홈페이지와 금융상품 몰을 고객이 이용하기 편하도록 메뉴 구성과 디자인을 확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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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달이 채 안 된 시기에 금융계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런 평지풍파를 촉발시킨 주인공은 인터넷은행. 국내 첫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가 영업을 시작한 이달 3일을 전후해 금융권이 요동치고 있다. 케이뱅크라는 메기 한 마리가 들어와 잠잠하던 수조(水槽)를 출렁이게 하자 미꾸라지들이 깜짝 놀란 형국이다. 이른바 ‘메기 효과’다. 케이뱅크 행보에 잔뜩 긴장하는 곳은 시중은행, P2P 업체, 저축은행 가릴 것 없다. 모두에게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케이뱅크는 우량 신용등급의 경우 연 2.69%를 최저금리로 제시했고, 4~7등급의 중금리 대출은 연 최저 4.15%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이에 시중은행은 시중은행대로, 중금리 대출에 특화된 P2P 업계는 그들대로 인터넷은행에 고객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양이다.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덜컥 겁이 났다”고까지 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2주 만에 20만명 가입자를 모은 초반 성적만 놓고 보면 기존 금융권이 위기의식을 느낄 만하다.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인터넷은행이 휘젓고 다니자 기존 판이 흔들릴 조짐마저 보인다. 얼마 뒤 카카오뱅크가 가세하면 판이 아예 뒤집힐 지도 모를 일이다. 은행권이나 P2P 업계가 대응책을 서두르는 까닭도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천적인 메기가 등장했으니 미꾸라지가 살아남으려면 더 빨리 움직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 보면 생존력이 높아지고 도전과 혁신도 기대할 수 있다. 산업 전반이 활기를 찾고 소비자 편익이 높아지는 것은 덤이다. 요즘 금융 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그래서 고무적이다.

지금 메기가 필요한 것은 금융산업만이 아닐 것이다. 고인 수조 속에 웅크리고 있는 분야가 많은 게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경쟁을 회피한 채 기득권에 기대고 있는 기업·업종이 적지 않고,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울타리를 허물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는 제조업의 부활도, 경제 활력도 기대하기 힘들다. 인터넷은행발(發) 경쟁체제가 더 확산돼야 하는 이유다. 수십 년 된 산업 칸막이나 규제 등을 과감히 털어내야 구글이나 테슬라처럼 판을 뒤흔드는 큼지막한 메기가 나올 수 있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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