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휘자가 아닌 협주자 입장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운영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뒤바뀌는 과학기술 진흥정책 때문에 과학자들은 연구에 매진할 수가 없습니다.”
21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부 주최 ‘2017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과학기술훈장 혁신장’을 받은 곽상수(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같이 말하며 “과학기술 정책은 백년을 보고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국 과학기술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책과 지원이 수시로 바뀐다는 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7년째 생명과학 분야를 개척해온 곽 연구원은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왜 안 나오는지 따질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는지가 중요하다”며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과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곽 연구원은 세계 7대 작물로 꼽히는 고구마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구마 박사’로 불린다. 지난 1980년 경북대 농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농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90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근무하며 환경생명공학연구센터장과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2009년 중국농업과학원 고구마연구소 객원교수와 한중 사막화방지생명공학공동연구센터장으로 근무하면서 식량 안보와 식량 과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발표한 연구논문만 100여편에 달하고 2014년에는 한국식물생명공학회장을 맡아 세계에 한국의 식물기술 경쟁력을 알린 주역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카자흐스탄 정부 산하 생명공학연구소와 협력해 현지에서 고구마 재배에 성공했고 지난해에는 경상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사막과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라는 ‘슈퍼 고구마’를 개발해 전 세계 과학계의 조명을 받았다.
곽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이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이 융합하는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식량 산업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하다”며 “이미 식량부족 국가에 접어든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장기적 목표를 갖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산과 지원을 앞세운 근시안적 정책보다 과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R&D)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편 곽 연구원은 한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정부의 지원 못지않게 과학자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학기술은 평생을 매달려 성취하는 영역인데 한국 과학자들은 성과주의에 경도돼 자기가 할 일만 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과학자는 정부의 예산을 받는 일종의 공무원인데도 주말에 연구실 불이 꺼지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곽 연구원은 “다행스럽게도 역량 있는 젊은 후배들이 기꺼이 과학자의 길을 선택하고 있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는 밝다”며 “당장 결과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과학자의 숙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