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구두매장에서 일하는 김승호씨의 월급은 280만원 정도다. 혼자 자취를 하는 김씨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인 원룸에서 산다. 월세를 20만원가량만 올리면 근처의 괜찮은 18평 오피스텔로 옮길 수 있지만 이사할 생각은 없다. ‘집에 있는 시간도 많지 않은데 굳이 이사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대신 그는 몇 개월 전 6,000만원대의 벤츠C200를 리스했다. 저렴하게 해도 리스료를 월 67만원 내야 하지만 리스료를 10% 할인한다는 광고에 즉석에서 계약했다. 쉬는 주말이면 요리하기 귀찮아 근처 편의점에서 9,900원짜리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김씨지만 출퇴근 때나 주말에 가끔 서해나 동해로 드라이브하러 갈 때는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요즘 금융권은 물론 전 산업계의 화두인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 일상의 단면이다. 1983~2003년에 태어나 지금 15세에서 35세 사이인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기기와 함께 사춘기를 보냈다. 1970년대생인 ‘X세대’와는 또 다른 별종인 셈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컵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즐겨 먹으면서도 자동차나 옷 구매 등 자신이 좋아하는 데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의 행복이 소비의 가장 큰 기준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가족부양이나 부의 축적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왔다면 이들은 소득의 절반을 문화생활이나 해외여행·식도락 등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 과감하게 쓴다. 김형곤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는 “오는 2025년께 밀레니얼 세대는 주소비층의 46%를 차지하면서 핵심 경제인구로 급부상할 것”이라며 “기성세대의 눈에는 낯설지만 금융이나 산업권에서는 이들을 먼저 잡는 쪽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리 졸라매고 산다?
저축보다 문화생활 등에 소득 절반 지출
밀레니얼 소비 스타일은 이미 생활 주변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중견기업 웹디자이너로 일하는 최현미씨는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만명을 넘는다. 패션감각이나 멋스러운 사진과 함께 그의 인스타가 인기를 끄는 것은 외국에서 유행하는 인기 아이템을 먼저 소개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주 금요일 휴가를 내고 일본 도쿄에 가서 특별한 것이 아닌 커피숍 투어를 했다. 그 중 국내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인기인 ‘블루보틀’ 커피숍 방문 사진이 특히 엄청난 댓글 세례를 받았다. 할인카드로 커피를 마시거나 포인트 쌓는 것을 잊지 않는 등 소비를 꼼꼼히 하지만 목표는 상하반기 1년간 2번의 해외여행이다.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저축에 대한 부담이 없어 현재 3년째 이뤄왔다.
아프리카TV의 인기 브로드캐스팅자키(BJ)인 타미미씨는 승무원을 그만두고 2년 전 BJ로 ‘전향’했다. 걱정도 많았지만 그는 몇 개월도 안 돼 인기 BJ로 자리 잡았다. 전직 승무원이 알려주는 승무원 면접 후기 등 전직도 십분 활용한다. 300만원이었던 월급은 애청자들의 ‘말풍선’으로 첫 달에만도 1,700만원이나 됐다. 남의 눈은 중요하지 않다. 방송하면서 받는 피드백에 신이 나고 또 말풍선이 돈으로까지 연결되니 선택에 대한 미련은 없다.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방식이 기존 세대와 전혀 다르다 보니 은행이나 유통 등 내수산업 전반에서 ‘이들을 어떻게 끌어들일까’ 하는 고민이 공통의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혼자 밥 먹고 술 마시는 혼밥·혼술은 기본이고 혼자 영화 보기도 ‘혼자’ 카테고리의 기초 단계에 속한다. 장은 생필품 정기배송으로 대체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어색해하지 않는다. 시급 5,000원의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다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공항패션’을 더 선명하게 찍기 위해 1,000만원대의 카메라를 망설임 없이 사거나 응원하는 아이돌을 위해 지하철역 디지털 광고판을 1회에 300만원이나 들여 10회 이상 설치하는 식으로 자신들의 소비를 즐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소유에 대한 욕심도 없다. 남이 썼던 중고물품에 대한 거부감도 전혀 없다. 에어비앤비·우버 같은 공유경제는 이론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셰어링 시장이 2011년 6억원에서 2016년 1,800억원으로 300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한 데도 밀레니얼 세대의 달라진 소비패턴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FUN하게 산다!
혼밥·혼술 등 일상화, 소비기준은 ‘FUN’
“금융권 2030세대 유치 전략 고민해야”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남의 입소문에 의지하기보다 직접 필요한 것을 검색하고 비교·분석해 구입을 결정하는 특징을 가졌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기존 세대가 매장 직원의 설명을 선호했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직원이 따라다니며 일일이 설명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한다”며 “일방적인 설명보다 자신이 실물을 보면서 직접 알아보는 적극적인 선택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성세대의 눈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별종’이지만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기준이 ‘펀(fun·재미)’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나면 다양한 가능성을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형곤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는 “밀레니얼은 디지털 시대가 만들어낸 완전한 신인류”라며 “기존 베이비부머 중심의 고객 전략으로는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파트너는 “기존 사업 내 신사업을 하위조직으로 두는 방식이 아니라 별도의 전문인력으로 분리 독립시켜 밀레니얼 세대를 잡을 수 있는 새로운 DNA를 구축하는 업체만이 업종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