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업계의 글로벌 진출에 가속도가 붙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미국 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제품 판매허가를 받고 SK케미칼이 미국과 캐나다·유럽에 이어 호주에서도 신약 판매 승인을 받는 등 선진국 공략에 청신호가 켜졌다. 업계에서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SK케미칼이 각각 미국과 호주에서 받은 판매승인이 국내 의약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3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바이오시밀러 ‘렌플렉시스’의 판매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렌플렉시스는 미국에서 정식 허가를 받은 다섯 번째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됐다. 미국 판매는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 판매와 유통은 다국적제약사 머크가 담당한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미국 시장 진출은 창립 5년 만에 이룬 쾌거”라며 “유럽에 이어 미국에도 본격 진출하면서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술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FDA 판매승인을 얻은 렌플렉시스는 다국적제약사 얀센이 개발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다.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류머티즘 관절염, 궤양성 대장염, 크론병 등에 쓰이며 레미케이드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단일 제품으로만 약 9조3,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를 상용화한 기업은 셀트리온(068270)과 삼성바이오에피스 2곳에 불과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국 시장 진출은 삼성의 바이오 경쟁력을 가늠하는 시험대이자 국산 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바이오의약품 허가가 까다로운 미국 시장을 열어젖혔다는 점에서 향후 선보일 바이오의약품 출시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또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허가 신청에서 승인에 이르는 시간을 대폭 단축했다. 지난해 3월 FDA에 ‘렌플렉시스’의 판매 허가를 신청한 뒤 13개월 만에 승인을 받았다. 통상 FDA에 신규 의약품 허가를 신청한 뒤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 짧게는 1년 반에서 길게는 2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앞서 국산 바이오시밀러 1호로 미국에 먼저 진출한 셀트리온의 ‘인플렉트라’는 지난 2014년 8월 FDA에 허가를 신청한 뒤 2016년 4월에 승인을 받아 20개월이 걸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승인기간 단축은 천문학적인 연구개발(R&D) 비용이 투입되는 바이오의약품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라며 “아무리 우수한 제품을 개발했더라도 출시를 제때 하지 못하면 후속 제품 개발에 차질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미국 시장 조기 진출에 성공하면서 후속 제품 출시에도 탄력이 붙을 듯하다. 가장 유력한 제품은 당뇨병 치료제(개발명 SB9)로 지난 1월 유럽에서 ‘루두수나’라는 제품명으로 시판 허가를 받았다. 루두수나는 다국적제약사 사노피가 개발한 ‘란투스’의 바이오시밀러로 연간 시장만 10조원에 이른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8월 미국 FDA에 루두수나의 허가를 신청했다. 렌플렉시스의 승인기간에 비춰보면 이르면 연내에 허가를 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출사표를 내밀면서 셀트리온과의 정면승부도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해 말 미국 시장에 뛰어든 셀트리온은 다국적제약사 화이자를 현지 협력사로 정하고 올 초부터 활발하게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레미케이드를 개발한 얀센도 텃밭인 미국에서 시장 수성의 의지를 대대적으로 내비치고 있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합류로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3파전 구도가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SK케미칼도 이날 바이오신약 ‘앱스틸라’가 호주 식약처(TGA)로부터 최종 시판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앱스틸라는 지난해 5월 FDA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지난해 12월 캐나다, 올해 1월 유럽 의약청(EMA)으로부터 각각 판매 허가를 받아냈다. 현재 일본·스위스 등에서도 허가 심사 절차를 밟고 있는 등 8조원 규모의 글로벌 혈우병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앱스틸라는 선천적 출혈성 장애 질환인 A형 혈우병 치료제로 두 개의 단백질이 연합된 형태였던 기존 치료제와 달리 두 단백질을 하나로 완전히 결합해 안정성과 효능을 획기적으로 높인 혁신적인 치료제로 평가받는다. 주 3·4회 투여해야 하는 기존 치료제와 달리 주 2회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데다 글로벌 임상을 거치며 중대 부작용이 한 건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강점이다.
SK케미칼은 2000년부터 앱스틸라 개발에 착수해 2009년 호주 CSL사에 신약 기술을 수출했고 이후 CSL은 앱스틸라의 생산 및 글로벌 임상·허가 신청을 진행해왔다. CSL은 한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의 독점 판매권을 가진다. 대신 SK케미칼은 앱스틸라의 판매 매출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받게 된다.
SK케미칼은 백신·혈액제 등 바이오 신약 분야에서 글로벌 강자가 되기 위한 노력에 매진 중이다. ‘스카이셀플루4’ 등 프리미엄 독감 백신 등의 해외 수출을 타진하고 있으며 글로벌 백신 전문기업인 사노피와 함께 2020년을 목표로 차세대 폐렴 구균 백신도 공동개발하고 있다.
박만훈 SK케미칼 사장은 “백신·혈액제 등 바이오 사업에 대한 오랜 연구개발(R&D) 투자로 일궈낸 성과들이 글로벌에서 역량을 입증받고 있다”며 “국내를 넘어 세계 인류의 건강 증진을 위해 투자를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성·김경미기자 engi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