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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부족한 볼리비아 ‘라 파스' (2)

볼리비아 라 파스에 물을 공급하는 빙하. 이 빙하가 사라져 가자 라 파스 시민들은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리고 물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갈색 다이아몬드 : 한때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던 이 스키 리조트는, 빙하가 사라지자 황량한 돌 무더기로 변했다.갈색 다이아몬드 : 한때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던 이 스키 리조트는, 빙하가 사라지자 황량한 돌 무더기로 변했다.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안데스 평원에 엄청난 물 부족을 일으킬 거라고 여러 해 동안 예고해 왔다.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등장하기 전에 불길한 음악이 나오는 것처럼, 이 가뭄 이전에도 꾸준히 경고의 목소리는 있었다. 비정부기구인 옥스팜과 스톡홀름 환경 연구소는 각각 2009년과 2013년에 더욱 효율적인 물 관리가 필요하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 1,000년 동안 원주민 우루 무라토 인들을 지탱해 주었던 포포 호수는 작년에 사라졌다. 동시에 겨울 강우량도 25% 이상 줄 어들었다. 그 와중에 현지의 고빙하학자 에드손 라미레즈는 꾸준히 대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조가 부드러운 라미레즈는 라 파스에 위치한 산 안드레스 대학의 수리학 및 수문학 연구소의 교수다. 그는 이 위기에서 카산드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리아 모스 왕의 딸.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하였다)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 그러나 과학은 그에게 그리 큰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1998년 그는 라 파스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차칼타야 빙하를 측량하기 시작했다. 차칼타야 빙하는 당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로 잘 알려져 있었다. 라미레즈는 빙하가 줄어들고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더욱 경악스러웠다. 두께가 15m인 이 빙하의 두께는 무려 1년에 1m 이상씩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라미레즈의 계산에 따르면 빙하는 2015년이 되면 사라질 것이었다. 2005년, 그는 시청 관료들에게 갔다. 시에 물을 공급해주는 빙하가 사라지는 것을 알리고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끔찍한 미래를 예측했다. 관료들은 그의 말을 정중히 경청했으나 납득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결국 라미레즈의 예측은 틀렸음이 밝혀졌다. 현실에 비하면 라미레즈의 예측조차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뜻이다. 라미레즈의 예측보다 무려 6년이나 빠른 2009년에 빙하는 사라지고 말았다. 갈색 얼룩 말고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이 소식은 전 세계의 언론을 강타했다. 그러나 라 파스는 빙하가 사라진 것 이상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알티플라노 고원의 온도는 섭씨 2도나 올랐다. 지난 15년 동안 연간 강수량은 20%나 줄었다. 현지 수자원 당국에 따르면 앞으로 2030년까지 최소 10%가 더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햇살 속에 먼지가 떠 가는 그의 대학 사무실에서 라미레즈는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던 예언이 결국 실현된 데 대해 정의감도 분노도 느끼지 않았다. 마치 월마트 매니저처럼 버튼이 줄줄이 박힌 빳빳한 반소매 셔츠를 깔끔하게 차려 입고 검은 머리를 뒤로 넘긴 그는 대신 정부에 미래에 대비하라고 주문할 생각이다.

그는 예고 없이 입을 열어, 앞으로 닥칠 파국적인 상황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볼리비아는 전 세계 온실 가스 배출량의 0.35%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14.4%이다. 그러나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볼리비아는 위치와 고도 때문에 탄소 배출의 영향을 미국보다도 더욱 빨리 당하게 되었다. 볼리비아는 40년 전에는 10년 동안 섭씨 0.11도가 올랐는데 지난 10년 동안에는 섭씨 0.33도가 올랐다고 그는 설명했다. 한편 세계 평균은 지난 10년 동안 0.15~0.20도였다. 기후 변화는 또한 태평양상 엘 니뇨의 횟수와 강도도 높였다. 엘 니뇨 해에 볼리비아의 평균 강우량은 20~30%가 줄어든다. 엘 니뇨 해가 아닌 해에도 강수 횟수는 줄어드는 반면 한 번 내릴 때의 강도는 높아져 내리는 빗물을 보관하기 어렵고 농부들이 농업용수로 사용하기도 어렵다.


비는 언제 누가 내리려나? : 빗물을 받아 모으기 위해 노동자들이 새 댐과 더 큰 저수지를 만들고 있다. 비는 올 것 같지 않다.비는 언제 누가 내리려나? : 빗물을 받아 모으기 위해 노동자들이 새 댐과 더 큰 저수지를 만들고 있다. 비는 올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빙하의 상실을 불러왔다. 안데스 산맥의 빙하는 18,000년 전 최절정기에 달했던 마지막 빙하기의 유물이다. 이 귀한 빙하가 현재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우기에 조금이라도 기온이 높아지면 이 고고도 지대에는 눈 대신 비가 온다. 빙하는 눈이 와야 재생되며, 비를 맞으면 녹는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라미레즈에 따르면 그 결과 라 파스 인근의 열대 빙하의 37.4%가 지난 1980년부터 2009년 사이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빙하 녹은 물이 도시의 연 물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양은 10~20%에 불과하다. 그러나 빙하는 옛날부터 이 도시가 가뭄을 견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해발 5,700m 고도의 와이나 포토시 산에 자리잡은 엘 알토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엘 알토는 라 파스의 자매 도시로서,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곳도 가뭄에 시달리지만 여전히 물이 나오고 있다. 라미레즈는 이렇게 설명한다. “더울 때면 와이나 포토시에서 나오는 물이 늘어나 균형을 맞춰 준다.”

산악인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와이나 포토시 산은 수 천년 동안 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그러나 한 때 청백색의 눈이 두텁게 덮혀 있던 이 산의 눈도 지난 수십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이 산의 눈은 앞으로 얼마만에 다 사라질 것인가? 라미레즈는 약간의 계산을 해보고 나서 대답한다. “아마 40년 정도?”

이는 이 지역의 미래 수자원 상황에 대한 사망 선고나 다름 없다. 라미레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라 파스를 탈출할 것인가. “아니.” 그는 고개를 내젓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정부에 수자원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는가? 그는 다시금 고개를 내저었다.

볼리비아의 수자원 관련 정치는 민감한 문제다. 라미레즈가 말없이 암시한 것은 정부는 크나큰 비판에도 어쩔수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의 비난이 너무 잘 알려지고, 기후 변화 보다는 인간의 실수에 더 초점이 맞춰질 경우 그는 연구 보조금 및 기타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침묵이 방을 가득 채웠다.

라미레즈는 갑자기 입을 다시 열더니 모여드는 먹구름들 사이의 빈 밝은 틈새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물을 대하는 태도는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빗물을 모으려고 하고 있다.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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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BY LESLIE KAUFMAN, PHOTOGRAPHS BY CHRISTINA HOLMES

LESLIE KAUF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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