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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기획:사전제작②] 제2의 ‘태양의 후예’는 왜 나오지 않나

어느새 ‘사전제작 징크스’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2016년 ‘태양의 후예’ 이후 방영된 여러 편의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선방은커녕 쪽박에 그치면서 의구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도대체 왜, 우리는 제2의 ‘태양의 후예’를 볼 수 없는 것일까.

우선 사전제작 드라마 성공 사례로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 ‘태양의 후예’부터 살펴보자. ‘태양의 후예’가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데 성공한 것은 맞지만 당초 그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재난드라마인데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사전제작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KBS2 ‘태양의 후예’, ‘함부로 애틋하게’/사진=KBS2 ‘태양의 후예’, ‘함부로 애틋하게’


정성효 KBS 드라마센터장은 “김은숙 작가가 3~4년 전부터 기획안을 가지고 있었다. 1년 가까이 작업을 했으며 제작 기간도 8개월 이상 걸렸다. 좋은 의미, 온전한 의미의 사전제작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며 “사전제작을 하지 않을 경우의 위험 부담이 더 컸다. 다행히 중국 수요와 맞아서 사업성도 있었다. 재난에 무게를 두고 기획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했으니, 빠른 중국 심의 통과도 가능했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 이후 중국을 겨냥하면서 나온 사전제작 드라마들은 진정한 의미의 사전제작 드라마라고 하기 어려웠다. 중국 심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 생방송 촬영이나 다름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것. 정 센터장은 “그 이후 나온 드라마들은 짧은 기간에 급하게 만든 감이 있다. ‘화랑’은 4개월 걸렸다. 또 다시 시간에 쫓기게 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사전제작의 본 의미대로 시간을 들여 찍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만약 충분한 공을 들여 찍었다고 해도 문제점은 또 발생한다. 지난해 KBS2 ‘함부로 애틋하게’의 실패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맨투맨’ 제작사인 마운틴 무브먼트 스토리의 황지선 대표는 “우리나라는 계절상 사전제작이 힘들다”고 운을 뗐다. 그는 “사계절이 너무 뚜렷해서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맨투맨’은 10월에 찍었지만 4월에 방송해야 했다. 그래서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력이 배로 들었다. 눈이 오는데도 배우들이 옷을 얇게 입고 떨면서 찍었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실제로 계절감은 드라마의 성패에 영향을 미친다. ‘함부로 애틋하게’는 김우빈과 수지라는 한류스타에 ‘미안하다 사랑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를 집필한 이경희 작가를 기용했으나 10% 초반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기록적인 무더위가 찾아온 한여름에 라쿤털 패딩을 껴입은 주인공들을 보자니 몰입이 안 된다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또한 급변하는 트렌드를 민감하게 따르지 못한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힌다. 제작 당시에는 라이징 스타였던 배우의 이미지가 불과 반년에서 1년 사이에 바뀌거나, 드라마에서 주로 다루는 소재와 설정이 금세 올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화면의 세련미도 무시할 수 없다. 황 대표에 따르면 국내 드라마 제작 기술의 발전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1년 전에 찍어 놓은 것만 봐도 촌스러운 느낌이 든다는 것. 드라마를 다 찍고 편성을 받아놓은 상황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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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도깨비’, JTBC ‘힘쎈여자 도봉순’/사진=tvN ‘도깨비’, JTBC ‘힘쎈여자 도봉순’


한국드라마제작협회 박상주 사무국장은 영화와 비교할 때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특수성이 있다는 의견을 더했다. 그는 “대중들은 드라마에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영화와 드라마라는 콘텐츠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다. 영화는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서 보기 때문에 좋아하는 요소만 확실하다면 계절이나 트렌드와 크게 상관이 없다. 드라마는 현실과 더욱 가까운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리감을 쉽게 느낀다. ‘왜 여름인데 겨울 드라마가 나오지?’라는 생각을 한다. 반면 영화를 보면서 그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사전제작 드라마의 일정이 빨리 시작되면서 노출 기간이 늘어나는 점도 있다. 배우의 작품 출연 확정은 물론이고, 대본을 받아 검토하는 시기부터 관심을 받는 상황이다. 사전제작은 작품의 인지도를 높이기도 하지만,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만큼 지루함과 피로감을 느끼게도 한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기간보다 훨씬 긴 시간 전부터 이름이 알려지니, 막상 첫 방송을 시작했을 때 이미 종영한 줄 알았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전제작 드라마의 한계점 때문에 최근 대안으로 반(半) 사전제작 드라마가 떠오르고 있다. 사실 반 사전제작 드라마라는 용어는 명확한 기준에 의해 확립된 것은 아니다. 반 사전제작 드라마 중 하나로 알려진 JTBC ‘힘쎈여자 도봉순’의 송원영 CP는 “드라마를 여유 있게 찍은 것일 뿐, 반 사전제작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방송처럼 촬영되는 드라마와 비교하기 위해 드라마 관계자들은 반 사전제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반 사전제작 드라마는 전체 촬영분의 반 정도를 미리 찍어두고 방송에 들어간 작품을 가리킨다. 물론 반 사전제작 드라마라고 해서 끝까지 여유 있게만 촬영하는 것은 아니다. tvN ‘도깨비’도 반 사전제작처럼 시작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생방송화 되기도 했다. 그러나 초반 시청자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앞부분을 공들여 찍는 것은 분명한 이점이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 ‘나쁜 녀석들’, ‘시그널’ 등도 대표적 반 사전제작 드라마로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드라마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여유로운 제작 환경이 드라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앞서 제시한 여러 이유들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온전한 사전제작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어렵다고도 덧붙인다. 반 사전제작과 완 사전제작 드라마의 공생은 가능할까? 아니면 국내의 특수성에 따라 결국 한 쪽이 잠식당하게 될까. 어느 쪽으로든 아직 가능성은 열려있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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