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랜드’를 혹평하는 사람마저도 극찬하는 부분은 마지막 7분이다. 사랑 뒤에 남는 온갖 가정과 후회라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시퀀스, 그리고 두 사람만의 눈인사로 마무리되는 이별의 장면은 이 영화의 화룡점정. 단순한 플롯이나 뻔한 갈등구조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한 번에 잠재울 정도로 강렬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기대감 속에 지난달 막을 올린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는 라라랜드의 마지막 시퀀스 같은 강렬함과 압축의 미학이 없다. 영상과 무대예술이라는 전혀 다른 두 장르를 동일 선상에 두는 게 무리일 순 있다. 그러나 무대 예술 역시 길고 긴 한 사람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마저 압축적이면서도 납득 가능한 스토리로 뽑아내는 것이 연출과 작가(각색)의 역량이라는 점에선 영화와 다르지 않다.
스토리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국 아이오와주의 시골 마을 매디슨 카운티에 로즈먼 다리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찾아온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로버트(배우 박은태)가 무료한 시골 생활에 권태감을 느끼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전업주부 프란체스카(배우 옥주현)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확인하지만 결국 프란체스카가 가정을 지키기로 하면서 이들의 사랑은 추억으로 남게 된다는 얘기다. 영화로 국내에 가장 먼저 알려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결혼한 한 여인이 중년에 이르러 일생일대의 인연을 만나는 스토리가 중년의 관객들에게 통하면서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책도 숱하게 팔렸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던 이 작품은 30대 배우인 옥주현과 박은태가 캐스팅되면서 시작부터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무대에서도 중년에 이른 어머니의 인자함을 시종일관 드러내려 하는 옥주현의 말투는 물론 마지막 노년에 이르러 죽은 로버트의 유품을 살펴보는 장면에서도 옷과 허리를 구부린 자세만으로 나이를 표현하려 한 연기 역시 어색했다.
다시 만나기로 했던 두 사람이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눈을 마주치지만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장면 이후 이 작품은 압축의 미학을 완전히 잊은듯했다. 자녀의 졸업식부터, 결혼식, 남편의 장례식까지 시간의 흐름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지루함을 자아냈다.
애초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대극장용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 나흘간의 비밀스러운 사랑이라는 단조로운 스토리에 이렇다 할 사건도 없다. 특히 불륜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에 막이 오른 직후부터 두 주인공을 시종일관 째려보기만 하는 앙상블의 시선은 오히려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 앙상블은 무대 소품을 옮기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인 듯 계속해서 무대장치만 옮기고 이들의 역할이 제한적인 탓에 무대 공간 활용도는 떨어진다.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기엔 두 주역의 호소력 짙은 가창력과 연기, 훌륭한 넘버만으론 부족해 보인다.
영화의 흥행을 바탕으로 국내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열풍이 불었던 게 이미 20년 전이다. 만약 이 작품이 향후 국내에서 재연의 기회를 얻는다면 시대의 감성과 눈높이에 맞는 각색, 새로운 방식의 연출이 필요해 보인다. 6월18일까지 충무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