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통령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사전투표가 진행된 4일. 전국 3,507곳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의 발길이 종일 끊이지 않았다. 이날 투표율은 지난해 4·13총선 사전투표 첫날 투표율의 두 배가 넘었다. 특히 인천공항과 서울역 등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여행을 떠나기 전 투표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의 행렬로 수십 미터의 긴 줄이 이어지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날 서울 시내 곳곳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오전 시간대는 수업을 들으러 가는 젊은 대학생들과 출근길 직장인들이 주를 이뤘다. 마포구 대흥동의 한 투표소에서 만난 30대 초반 직장인 김모씨는 “내일부터 해외여행을 가게 돼서 출근하는 길에 투표하러 왔다”며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한국이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변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대생 심모(25)씨는 “이번 대선은 워낙 선거운동 기간이 짧은데다 후보들의 지지율도 엎치락뒤치락하는 바람에 어제(3일)까지도 누굴 뽑을지 망설였다”며 “오랜 고민 끝에 나라를 잘 이끌어나갈 것 같은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 이병훈씨는 “하루라도 빨리 투표하고 싶은 마음에 사전투표를 하게 됐다”며 “투표를 하고 나니 왠지 세상이 곧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기대했다.
단체로 등산복을 입고 아침부터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도 눈에 띄었다. 노원구의 한 투표소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지역 등산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산에 가기 전에 투표장을 찾았다”며 “어차피 누굴 뽑을지 마음을 정한 마당에 이왕이면 빨리 투표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 단위의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다. 여고생 딸과 함께 송파구 오륜동의 투표소를 찾은 50대 가정주부는 “다음 총선부터 투표권이 생기는 딸에게 대선 투표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 데리고 오게 됐다”고 전했다.
신분증만 있으면 거주지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는 것도 사전투표가 유권자를 끌어모은 요인이다. 전남에서 서울에 올라왔다가 투표장을 찾은 60대 차모씨는 “사전투표는 처음 해보는데 생각보다 훨씬 편리한 것 같다”며 “사전투표 덕분에 이번 대선 전체 투표율도 상당히 많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 50대 부부도 “때마침 일이 있어 한국에 들어온 김에 짬을 내 투표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황금연휴를 이용해 나들이에 나선 여행객들이 역사나 공항에 설치된 투표소로 몰리면서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역 3층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자녀를 품에 안은 어머니부터 서울에 있는 자녀를 보러 지방에서 올라온 부모, 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 휴가나온 군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인근 직장인들까지 뒤섞이며 대기 줄이 20m를 넘어서기도 했다. 인천공항 투표소에서도 30분 넘게 기다려야 겨우 투표를 할 수 있었다. 이곳 투표안내원은 “새벽부터 사전투표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며 “탄핵 직후 치러지는 선거인데다 사전투표가 많이 알려진 덕분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투표소를 나와 휴대폰으로 인증사진을 찍는 유권자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대선부터는 인증샷을 찍을 때 ‘엄지’나 ‘브이(V)’ 등 후보 기호를 암시할 수 있는 포즈를 취할 수 있다. 때문에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대흥동 투표소에서 만난 여대생 김지수(23)씨는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친구들도 투표를 많이 하도록 유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투표소에 만난 유권자들 대부분은 일찌감치 지지후보를 낙점했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또 TV 토론을 포함해 주요 공약과 정책들을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했다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다.
/김현상·빈난새·김기혁·하정연·우영탁·김우보·신다은기자 kim01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