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안전관리에는 가외성이 필요하다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


최근에 생산되는 대부분의 자동차는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유사한 기능을 하는 장치들을 중복 장착하고 있다. 예컨대 자동차 사고 시에는 안전벨트와 에어백이 동시에 작동하며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거나 경사면에서 미끄러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풋(주제동) 브레이크와 핸드(주차) 브레이크가 모두 필요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중 장치들은 단순히 비용 측면만을 고려할 때는 효율적이지 않으나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사고 발생 시 대규모 피해를 줄이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행정학에는 ‘가외성(加外性)’이라는 개념이 있다. 가외성은 일정한 표준이나 한도 밖의 남는 것, 초과분,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 등을 의미하는데, 과거에는 낭비나 비효율이라고 생각돼 행정개혁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란다우라는 학자가 가외성이 불확실한 상황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후 가외성은 행정의 영역에서 의미 있는 개념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안전관리는 가외성이 필요한 대표적인 분야다. 재난안전사업들은 사회간접자본(SOC)사업처럼 투자 효과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으며 재난·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투자라고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가외성을 소홀히 여긴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르고 있다.


2016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살처분 보상금 등에 3,000억원이 넘는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구제역 발생으로 사후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무려 3조3,000억원이 넘는 수준이다. 또한 요즘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세월호 인양 작업에 투입되는 예산도 1,000억원이 넘는다. 이러한 대규모 재난·사고로 인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 사회적 혼란·분열에 따른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그 규모를 산정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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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이전까지 정부는 재난안전분야 예산을 별도로 분류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난안전예산의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이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재난안전분야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다행히 2015년부터는 재난안전예산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재난안전예산 사전협의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재난안전예산 사전협의 제도는 국민안전처가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각 부처의 재난안전예산 요구서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기재부에 통보해 정부 예산 편성에 반영하는 제도다. 사전협의 제도를 통해 재난·안전 유형별로 피해현황과 발생 가능성 등을 종합 검토하고, 특히 가외성을 크게 두어야 하는 분야에 중점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난안전예산은 2014년 12조4,000억원에서 2015년 14조7,000억원으로 대폭 증가한 후 2016년 14조6,000억원, 2017년 14조3,000억원으로 최근 다소 줄어드는 추세다. 대부분의 중앙부처와 지자체들은 건설·산업·에너지 등 각각의 영역에서 산업진흥과 안전관리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 가외성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안전관리 분야에 우선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나 구제역·AI 등과 같은 대규모 재난과 사고의 피해를 다시 한 번 겪지 않으려면 이제 발상을 전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동안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 초과분이라는 가외성의 영역으로 인식된 안전관리를 이제는 꼭 필요한 것, 기본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모든 부처와 지자체가 예산을 편성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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