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3월 초에 20일 정도 입원하셨는데 이유가 뭐예요?” “평소 열은 안 나세요? 배는 안 아프시구요?” “병원은 왜 옮기시려는 거예요?”
인천 가천대 길병원 본관 1층에 자리 잡은 인공지능(AI) 암센터에 대장암 말기를 앓고 있는 환자가 들어서자 자리에 앉은 다섯 명의 전문의(혈액종양내과·소화기내과·대장항문클리닉·영상의학과·핵의학과)들이 앞다퉈 질문을 쏟아냈다. 의료진은 환자가 대답을 못하면 “모르는 게 자랑이 아니고 잘 알아야 한다”며 타박하기도 했고 전문적인 토론이 길어질 때면 어김없이 “우리끼리만 얘기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최근 AI 진료 현장을 방문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분의 진료 시간, 첫눈에 AI 의사 ‘왓슨 포 온콜로지(이하 왓슨)’의 역할이 돋보이지는 않았다. 상상처럼 ‘왓슨’이 해결책을 척척 내놓지 않았다. 의료진 역시 환자에게 ‘왓슨’의 역할을 설명한 후 “몸 상태가 괜찮으시면 수술적 요법을 권하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환자의 상황을 좀 더 면밀하게 지켜본 후 결정하자”는 원론적 결정을 내릴 뿐이었다.
그렇다고 ‘왓슨’의 역할이 결코 미미한 것은 아니었다.
환자의 진료기록과 영상 정보, 추천·비추천 요법과 추천·비추천 항암제 등 치료에 관한 모든 정보를 총망라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왓슨’을 사이에 두고 다섯 명의 의사와 환자는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의사와 의사, 의사와 환자 사이 정보 격차가 줄어든 것이다.
심선진 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지금의 ‘왓슨’은 정확도가 떨어지고 추천해주는 항암제 종류가 미국 기준에 맞춰져 있는 등 명백한 한계가 있다”면서도 “‘왓슨’을 통해 의료진과 환자가 서로 소통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함께 찾아가는 ‘다학제 진료(협진)’의 틀이 갖춰졌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더 표준화된 치료를 향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풍경은 길병원뿐 아니라 ‘왓슨’을 도입한 국내 병원 어디서든 만나볼 수 있다. AI 의사의 도입이 의료진의 다학제 진료를 활성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예컨대 지난 4월6일부터 ‘왓슨’ 진료를 시작한 대전 건양대병원 역시 ‘왓슨’을 이용한 암 환자 진료는 전문의 다섯 명으로 이뤄진 다학제 진료팀을 구성해 진행한다. 윤대성 건양대병원 암센터 원장은 “진료실은 ‘왓슨’을 통해 각종 자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어 이 자료들을 보면서 환자와 함께 추후 치료에 대해 상의하게 된다”며 “병리과와 영상의학과·혈액종양내과와 방사선종양학과 의사들과의 협진을 통해 진단과 치료과정을 설명하게 되니 환자들이 좀 더 신뢰가 간다고 평가한다”고 소개했다. 현재 유방암·자궁경부암·난소암·대장암·직장암·위암·폐암 등 총 7종의 암에 대해 협진을 하고 있는데 간암 등 다른 암 치료를 위한 시스템도 추가로 도입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AI 의사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효과를 아직 신뢰하기 어렵고 성능이 부풀려졌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환자들이 호평하는 이유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가 됐다. 일례로 가천대 길병원의 경우 자체 조사 결과 ‘왓슨’ 이용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는 10점 만점 중 9.4점에 이르고 지난해 12월 첫 진료를 시작한 이래 ‘왓슨’ 진료를 받은 환자가 250여명을 넘는 등 문의도 꾸준하다. 의료진도 매일 같이 쏟아지는 최신 의료정보를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분명히 도움이 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말한다.
다만 AI 의사를 이용한 다학제 진료가 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병원 측에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왓슨’은 의료기기로 분류되지 않아 별도의 진료비를 받을 수 없다. 또 다학제 진료비도 대학병원 등 3차 병원에서만 청구가 가능하다.
/인천=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
IBM의 인공지능 ‘왓슨’을 기반으로 대규모 의료 정보 클라우드를 구축, 종양학 진단과 치료에 통찰을 제공하는 개방형 플랫폼. 학술지·교과서 등 2,000만쪽에 달하는 의료정보를 이미 학습했고 매일 쏟아지는 최신 논문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