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모들이 모유수유를 할 때 가장 먼저 주의하는 것이 ‘음식’이다. 엄마가 먹는 음식이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실제 산모들이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동안 평균 5개 정도의 음식섭취를 중단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신손문 제일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팀은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는 산모 145명을 대상으로 섭취를 제한 중인 음식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9일 밝혔다. 이 연구 내용을 담은 논문은 대한소아과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최근호에 발표됐다.
논문을 보면 조사 대상 산모 모두가 최소 1개 이상의 음식 섭취를 제한하고 있었으며 산모 1인당 섭취를 제한 중인 평균 음식 개수는 4.9개였다. 섭취를 제한하는 음식 중에는 카페인 음료를 비롯해 김치, 날 음식, 찬 음식, 식혜 등 다양했다.
이어 응답자의 38.6%는 모유 수유 기간 스스로 음식을 가려먹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20대 젊은 산모의 경우 42.8%로 가장 높았고 30대 42.1%, 40대 6.7% 였다. 젊은 산모일수록 음식 섭취 제한에 대해 더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산모들이 가장 섭취를 중단하는 음식은 뭘까.
연구 논문에 따르면 1위는 커피 등의 카페인 음료(90.3%)였다. 이어 김치 등의 매운 음식(85.5%), 날 음식(75.2%), 찬 음식·식혜(각 69%), 고지방 음식(31.7%), 밀·견과류(각 13.1%), 우유 가공품(12.4%), 특정 과일(10.3%), 호박(8.3%), 특정 채소(7.6%), 해산물(4.1%), 콩류(2.8%) 순이었다.
이처럼 음식섭취를 중단하는 이유에 대해 산모들 중 84.1%는 ‘특별한 이유 없이, 또는 유아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막연한 우려 때문에 이들 음식을 피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카페인의 경우 모유로 옮겨지는 게 산모가 마시는 양의 1% 미만으로, 이 정도로는 아이한테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루 3잔의 커피를 마신 산모가 모유를 수유해도 아이의 소변에서는 카페인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다만, 하루 커피 5잔(750㎖) 이상으로 카페인을 다량 섭취하면 아이에게 카페인 자극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과도한 커피 섭취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부연했다.
또한 매운 음식의 대표격인 김치도 마늘과 양파, 파 등이 모유의 냄새와 풍미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젖먹이한테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연구팀은 “일부 육아 카페에서는 엄마가 매운 김치를 먹으면 아이의 항문이 빨개지거나 붉은색 변을 본다면서 매운 김치 대신 백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글이 마치 과학적 사실처럼 나돌고 있지만, 이는 전혀 근거가 없다”면서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가짜뉴스’와 같다고 비유했다.
산모들이 모유 수유 때 식혜와 찬 음식을 끊는 것도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연구팀의 견해다.
신손문 교수는 “한국에서 식혜는 전통적으로 모유 생산을 줄이는 것으로 생각돼 왔지만, 조사결과 이를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제시하는 문헌은 하나도 없었다”면서 “찬 음식을 무조건 제한하는 것도 모유의 온도가 체온 조절을 통해 잘 유지되는 점으로 미뤄볼 때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산모들 사이에서 ▲ 복숭아 또는 키위가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 ▲ 날 음식을 먹으면 식중독이나 기생충 감염에 걸릴 수 있다 ▲ 브로콜리는 복통과 가스를 유발할 수 있다 등의 금기사항이 나돌고 있으나 일부 산모에게 해당될 수 있으나, 모유수유를 통해 아이에게까지 전달된다는 건 근거가 없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이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에 의존하다 보면 오히려 모유 수유 자체에 부담을 갖게 돼 모유 수유 자체를 포기하는 잘못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평상시 골고루 영양분을 섭취하는 등 식생활 습관에 문제가 없었다면 모유 수유기에도 그 습관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