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위신을 걸고 개최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이 저조한 흥행성적과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 시 주석 1인 권력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대내용’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영국·일본 등 주요국 정상들의 불참으로 주요7개국(G7) 중에서는 이탈리아 정상만 참석하게 되면서 글로벌포럼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데다 외신들은 중국의 요란한 선전과 달리 일대일로의 유라시아 투자 성과가 크지 않아 오히려 주변국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게다가 중국이 핵·미사일 도발 위협으로 유엔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까지 초청해 국제사회에서는 북핵 이슈를 둘러싼 중국의 정략적 이해가 반영된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11일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오는 14~15일 베이징 근교 휴양지 화이러우구 옌치후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정상포럼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29개국 정상들을 포함해 1,500명의 관료·학자·기업가·금융인 등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발표를 인용해 이번 포럼에서 △인프라 건설 △산업투자 △경제무역 협력 △에너지자원 협력 △금융 협력 △문화교류 △생태환경 △해양협력 등 8개 주요 의제가 다뤄지고 인프라 건설을 위한 50개 이상의 협력 합의문에 서명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시 주석이 지난 2013년 9~10월 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 순방 때 처음 주창해 지난해 중국 5개년계획의 핵심 국가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 10년 임기가 끝나는 시 주석은 이를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삼아 임기 연장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시 주석의 아이디어가 나온 후 3년여 만에 열리는 글로벌포럼에 중국 정부가 쏟는 정성은 각별하다. 7일부터는 베이징 중심부에서 화이러우구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가 통제되고 옌치후 일대와 베이징 중심 톈안먼의 경비도 강화됐다. 스모그 예방을 위해 베이징 주변 공장 가동도 중단돼 ‘일대일로 블루’가 연출되고 있다. 어우샤오리 발개위 서부개발사 부사장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포럼이 중국만의 퍼포먼스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글로벌 현안을 다루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과 외신들의 반응은 차갑다. 블룸버그통신은 10일(현지시간) 시 주석이 이번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하는 세계 정상들로부터 중국의 세계화 계획을 담은 ‘세계화 2.0(Globalization 2.0)’ 성명서에 서명을 받을 계획이지만 참가국들의 사전 동의가 없어 역풍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일대일로 사업에 투자된 금액이 지난해 오히려 감소했다며 시 주석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투자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FT는 중국 상무부 자료를 인용해 일대일로 참여국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FDI) 규모가 지난해 전년 대비 2% 감소했고 올 들어서도 18% 줄었다고 지적했다.
일대일로 투자를 주관하는 중국개발은행의 국가 간 대출도 2015년 말 1,110억달러에서 지난해 말에는 1,100억달러로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4년 이후 중국 민간과 국영기업들의 일대일로 관련 60여개국에 대한 투자액이 대미 투자보다 적었다며 일대일로 투자는 중국의 허울 좋은 선전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중국이 포럼에 북한을 초청한 것도 구설에 올랐다. 이날 중화권 매체인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북한이 일대일로 포럼에 김영재 대외경제상을 보내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대일로 포럼 의제에 관심이 없는 북한이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대북 제재 압박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을 초청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조처라는 비난과 함께 북핵 대화를 강조해온 중국이 북한을 다시 자국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