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11일 단행한 청와대 직제개편은 ‘왕(王)실장 시대 폐막’을 의미한다.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의 후광 아래 호가호위했던 비서실장의 권한이 분산됐다. 대신 장관급 직책인 정책실장직을 되살려 비서실장과 더불어 청와대 비서실의 투톱 역할을 맡겼다.
직제개편을 통해 청와대는 권력집중을 스스로 견제하고 행정부처 중심으로 권한을 분산시키게 됐다. 청와대가 일일이 정부 부처별 업무에까지 간섭하지 않고 정책의 큰 원칙과 방향성을 제시하겠다는 의미다. 대신 부처 간, 기관 간, 민관 간 소통과 협업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때 국무조정실과 협업해 이를 중재하고 조정하는 소통을 매개하는 역할에 집중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각 부처의 차관은 물론이고 실·국장급 인사까지 간섭했던 박근혜 정부 시절의 청와대와는 차별화된 모습이다. 기존 정부의 청와대가 대통령과 비선세력의 권력 사유화를 조장하는 이미지였다면 새 정부의 청와대는 과감히 몸을 낮추고 권한을 분산시키겠다는 의지가 이번 청와대 직제개편에 담겨 있다.
특히 정책실장 부활 추진이 이채롭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김병준 정책실장을 임명해 장관급 예우를 하며 힘을 실어줬다”며 “정책실장직을 만든다는 것은 분야별 칸막이를 없애 각종 정책들을 융합하고 연계해 종합적으로 조율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주요 개편 내용을 보자면 △정책실장 부활 △일자리 수석 신설 △사회혁신수석 및 국민소통수석(기존 홍보수석) 신설 △비서실장 직속 재정기획관 신설 △특별보좌관 제도 활용 △비서실 산하 외교안보수석 폐지 후 국가안보실로 기능 통합 △안보실장 직속 국가위기관리센터 설치 △주요 정책의제 관련 비서관 신설(주택도시·통상·사회적경제·지방자치·균형발전비서관) 등이다.
비서실의 양대 실장은 업무를 철저히 분업화했다. 비서실장은 정무·민정·사회혁신·국민소통·인사수석을 관장한다. 반면 정책실장은 일자리·경제·사회수석을 휘하에 둔다. 여기에 더해 경제보좌관(국민경제자문회의 간사 겸임)과 과학기술보좌관(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간사 겸임)이 추가로 정책실장의 막료가 된다.
기능이 이처럼 다변화됐지만 443명이던 비서실 정원은 더 늘어나지 않았다. 청와대의 몸을 낮추겠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비서실의 위세가 줄어든 반면 안보실은 사실상 기능이 강화됐다. 비서실의 외교안보수석직이 폐지됨으로써 비서실장이 안보실장에 대해 직접적인 간섭을 하지 못하게 됐다. 안보실장은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첨병이 돼 남북관계와 외교현안, 국방전략 등 포괄적 안보이슈를 아우른다.
이번 개편으로 청와대는 ‘3실·10수석’ 체제에서 ‘4실·8수석·2보좌관’ 체제로 바뀌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실상 인수위 기능을 수행할 국가기획위원회를 꾸리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기위의 기능에 대해 “대선 공약의 현실성을 점검해 당장 할 것과 장기과제로 돌릴 것을 구분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국기위 구성 방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안이 있다”며 “주말에 조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