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섬웨어(컴퓨터 사용자의 중요 파일을 암호화한 뒤 이를 푸는 대가로 금전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 감염으로 피해를 입은 나라가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해 100개국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영국, 우크라이나, 대만 등이 주요 공격 대상이 됐다.
13일(현지시간) 보안업체 어베스트는 일부 정부기관과 병원, 기업 등의 업무가 마비되거나 차질이 빚어지는 등 지금까지 집계된 피해만 99개국, 7만5,000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피해 규모가 늘어나는 건 시간 문제로 보인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 대변인은 내무부 컴퓨터 약 1,000대가 감염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매체들은 수사기관들도 공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이동통신업체 메가폰의 대변인도 자사 컴퓨터들도 상당수가 이번 공격으로 작동을 멈췄으며 콜센터 기능은 가까스로 복구했으나 대부분 사무실은 문을 닫아야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피해국인 영국의 ‘건강보험공단’에 해당하는 국민보건서비스(NHS) 산하 40여 개 병원이 환자 기록 파일을 열지 못해 진료에 차질을 빚거나 진료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앰버 루드 영국 내무부 장관은 이날 “병원들이 시스템 장애를 극복하고 있다”고 전하는 한편 “NHS 병원들이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노후 컴퓨터 업그레이드를 촉구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신화통신이 중국 내 일부 중학교와 대학교가 공격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유사한 감염 징후가 나타났다. 해당 병원은 “아직 피해 사례는 없다”면서도 “유관부서가 비상근무를 하며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운송업체 페덱스는 자사 컴퓨터의 윈도 운영체제에 악성 소프트웨어 감염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최대한 신속하게 복구하려 노력 중이라고 발표했다.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 대변인도 “이번 공격으로 영향을 받았다”면서 “지난밤부터 공격에 대응하는 등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범죄조직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이번 랜섬웨어는 네트워크를 통해 유포되는 워너크립트(WannaCrypt), 일명 워너크라이(WannaCry)의 변종으로 알려졌다.워너크립트는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운영체제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네트워크웜(worm·자기 자신을 복제하면서 통신망으로 확산하는 컴퓨터 바이러스)이다. 첨부 파일을 열지 않더라도 인터넷에 연결만 돼 있다면 감염되는 방식으로 급속히 퍼진다.
보안업계는 이를 지난해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개발한 해킹 툴을 훔쳤다고 주장한 해커단체 ‘섀도 브로커스’(Shadow Brokers)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영국 서리대학의 앨런 우드워드 교수는 “이번 랜섬웨어는 미국 정보기관들에서 유출된, MS 운영체제의 취약점을 이용하는 해킹도구가 사용됐다”고 밝혔다. NSA의 전방위 도청·사찰 의혹을 폭로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트위터를 통해 “NSA 당국이 실기하지 않고 병원 공격에 사용된 결함을 ‘알아차렸을 때’ 이를 공개했더라면, 이번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