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조환익 한전사장 "발생 빅데이터 3조6,000억개 활용, 에너지 부가가치 창출"

[서경이 만난 사람]

전력 판매만으론 도태...IT·에너지 융합 필요

글로벌톱 만족 않고 에너지 플랫폼기업 도약

SW·플랫폼 투자 10배 늘려 '4차 혁명' 선도

원전 수출은 국가 아젠다 차원 적극 지원해야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송은석기자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송은석기자


“이제 에너지 사업도 ‘플랫폼’ 경쟁입니다. 과거 발전소 건설 수주 경쟁에서처럼 우리가 한번 수주하면 (다음에는) 다른 업체가 수주하며 나눠 먹는 방식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신산업을 아우르는 생태계를 선점한 기업이 사업을 독점하게 됐습니다.”

조환익(67·사진) 한국전력 사장은 내리 5년간 적자에 허덕이던 기업을 취임 4년 만에 글로벌 1등 전력회사로 올려놓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는 지난해 에너지 유틸리티 부문 세계 1위 업체로 한전을 선정했다. 1등이면 만족할 법도 하지만 그는 “아직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 성적표는 한전이 꼭 잘해서라기보다 경쟁업체들이 혁신과정에서 도태해 부진한 실적이 반영된 결과에 불과하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12조원을 넘어서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도 이는 앞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일종의 ‘사인(sign)’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최근 한전은 ‘특이점(Singularity, 양적 팽창에서 질적 도약으로 넘어가는 특정 시점)의 시대’ 접어들어 이에 대비하지 못하면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조 사장의 생각이다. 지난 12일 서울 양재동 한전아트센터 11층 한전 사장 접견실.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산업관료에서 수출공기업 사장으로, 그리고 한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기록될 조 사장을 만나 특이점 시대에 서 있는 한전이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조 사장은 올해부터 한전이 주력할 분야로 에너지 신산업 투자를 꼽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과 보조를 맞춰나갈 수 있는 에너지 신산업에 주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가 올해 신년사에서 한전이 특이점의 시대에 서 있다고 밝힌 것은 이의 연장선이다. 변화의 시기에 서 있는 만큼 예전처럼 전기만 팔아먹고 사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최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정보기술(IT)과 에너지가 융합하는 분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한전은 지난해와 올해를 비롯해 최근 몇 년간 실적이 좋았고 직원들은 글로벌 1등을 했다고 좋아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 굉장히 어려워진다는 사인으로 본다”며 “세계적인 에너지 유틸리티 회사들의 시가총액이 떨어지고 다 적자로 돌아선 상황만 봐도 에너지 회사 자체로는 존립이 어렵고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한전은 다시 적자로 돌아서 국가적인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한전은 최근 빅데이터 시장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한전이 가진 데이터는 3조6,000억개 정도 된다. 실시간 데이터 발생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과거에는 5분 단위로 데이터가 생성됐는데 지금은 2초 단위다. 전력을 생산해 소비하는 과정에 생기는 각종 발생장치에서 나오는 데이터만도 3조개가 넘는다. 조 사장은 “한전의 시설 진단 여부를 떠나 상권이나 지리정보·교통량 파악 등 데이터를 쓸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며 “빅데이터 투자를 가장 먼저 해야 할 곳은 바로 전력회사”라고 했다. 가상현실도 눈여겨보는 사업 분야다. 한전은 3주 전 미국의 선버지라는 플랫폼 회사와 우리나라 중소 배터리 회사, 캘리포니아주정부, 캘리포니아 전력회사와 가상발전소 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가상발전소는 발전소가 없는 발전소다. 전기가 신재생으로 많이 생산되고 그렇게 분산전원으로 돌아가면 그걸 거래할 수 있는 가상발전소가 필요하다. 일종의 에너지를 관리하는 플랫폼이다. 조 사장이 가상현실이 가장 먼저 실용화될 수 있는 곳이 에너지 분야라고 보고 적극적으로 사업 추진에 뛰어든 셈이다.


한전은 글로벌 에너지 신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에너지 신산업’을 중심으로 ‘업(業)의 변화’도 추진하고 있다. 조 사장은 올해 이러한 업의 변화를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디지털 켑코(KEPCO·한전)’로 진화하는 데 열정을 쏟을 계획이다. 그는 “프랑스 최대 민간발전사인 엔지와 독일 이온, 심지어 도쿄전력까지 이미 대부분의 전력회사가 새로운 에너지 유틸리티 기업으로의 변신을 추진하는데 이는 모두 에너지 솔루션 제공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며 “심지어 소프트뱅크·구글도 이를 추진하고 있으며 누가 먼저 ‘플랫폼’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자신했다. 그는 또 “구글이 우리나라 들어와 에너지플랫폼을 구축해서 모든 데이터를 거기에 다 담아버리면 우리는 거기에 완전히 예속되는 것”이라며 “지금이 중요한 시기로 국가적으로도 공기업이라고 관리할 생각을 하기보다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도록 지원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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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전이 4차 산업혁명 분야에 집중투자하기 위해 올해 관련 예산을 대폭 늘렸다고 귀띔했다. 조 사장은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은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투자로 이번에 ‘캡코키즈’ 18개 기업을 선정했는데 200개까지 늘릴 생각이다. 대부분 소프트웨어 업체들로 지난해보다 10배 늘린 4,200억원을 올해 예산으로 배정했다”며 “우리가 빨리 소프트웨어를 장악해야 각종 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이를 통해 한전의 역할 변화, 다시 말해 업의 전환이 빨라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원전 사업과 관련해서는 해외 원전 분야엔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전은 최근 영국 뉴젠 프로젝트 지분 인수 1순위로 꼽히며 원전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 사장은 “우리만큼 원전을 잘하는 나라가 이제 없어 해외 원전 사업은 꼭 해야 한다”며 “한전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성공하니 여러 나라의 생각이 달라졌다. 2013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는 에너지장관이 다른 데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오라고 했는데 (UAE 원전이 성공하니까) 올해는 직접 한국에 찾아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얘기할 정도로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원전 사업은 수주하면 설계와 기자재, 부품, 장비, 건설, 운영, 유지·보수, 폐로까지 장기간 돈이 들어오는 프로젝트로 수익성이 높은 만큼 원전의 해외 수출은 국가 어젠다 차원에서 총력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게 조 사장의 생각이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3~4년 전에는 산업용 전기가 쌌던 게 사실이지만 지금은 모두 현실화됐다”며 “산업용 전기에 지금도 보조금적인 혜택이 있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업종별 전기요금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세금도 아닌데 정책변수가 너무 많이 들어가 가정용·일반용·산업용에 더해 농업용 전기 등 요금체계가 너무 다양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통신요금이 기업이 쓴다고 비싸고 학생이 쓴다고 더 싸지는 않다”며 “전압별·목적별 요율 체계로 점차 바꿔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데이터 산업이나 미래 먹거리, 뿌리산업처럼 전기 사용이 많은 산업은 더 저렴하게 해주는 등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리=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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