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 사건’이 1년 가까이 지났다. 그간 성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문제의식은 높아졌지만 사회적인 인식 변화는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당시 피해자 여성을 살해한 남성은 “여성에게 자꾸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여성들은 길거리로 나와 사건을 ‘여성살인(페미사이드·femicide)’으로 규정하고서 목소리를 높였다. 한밤중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휘황찬란한 조명이 곳곳을 밝히는 유흥가에서 여성이 ‘묻지마 범죄’에 변을 당하자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 여성 인권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의 확산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페미니즘 단체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사건 발생일부터 1년 사이 교보문고에서 팔린 페미니즘 관련 도서는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3.7배 늘었다. 페미니즘 도서 구매자의 성별과 연령대를 분석해보면 20대 여성이 41.1%로 가장 많았다. 각종 여성단체는 사건 발생 1주기인 17일을 전후로 서울·대구·부산 등지에서 추모 문화제를 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각종 여성 안전대책을 내놓고 있다. 공중 화장실 앞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거나 화장실 내부에 비상벨과 안심 거울을 달았다.
하지만 이는 대증요법일 뿐이라는 지적이 학계와 여성계, 시민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제기된다. 사회적으로 ‘여성혐오범죄’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은 채 대책만 만들다 보니 제2의 ‘강남역 살인사건’을 막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법원에서 여성혐오범죄라는 점이 인정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그에 걸맞은 후속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고 비판했다. 여성혐오범죄의 존재를 인정하고 처벌수위를 높인다면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윤김 교수의 주장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도 “CCTV를 다는 건 단기적 대책일 뿐”이라며 “이번 사건의 기저에는 여성혐오라는 차별적 구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수사기관이 조현병 환자의 범죄라는 것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여성혐오범죄라는 새로운 담론 자체를 차단해버렸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대책으로 젠더 감수성을 높여주는 교육을 일상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범인과 같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자 주제에 감히 나를 무시했다’는 인식을 뿌리 뽑으려면 대학교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성차별 구조를 무너뜨리는 교육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신영인턴기자 sy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