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스테이크는요, 여기 파인애플이랑 같이 먹어야 맛있거든요. 더 드세요.”
지난 14일 오후7시 서울 청계천광장에 고소한 스테이크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손님이 하나둘 모여들자 앳된 얼굴을 한 주방장이 불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스테이크를 굽고 자른다. 종이 그릇에 고기를 한 점 한 점 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이 주방장은 9개월 차 스테이크 푸드트럭 사장인 김동우(30)씨다.
처음부터 주방장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유년 시절을 오롯이 수영장에서 보냈다. 5세부터 20대 중반까지 수영선수로 지냈지만 군 입대를 앞두고 덜컥 수영을 그만뒀다. 더 이상 수영으로는 성장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시청 수영지원팀에 사표를 내고 집에 돌아온 뒤 쫓기듯 짐을 싸 캐나다로 날아갔다. 6개월 동안 주중 사흘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머지 사흘은 캐나다의 갖가지 음식을 먹어보고 여행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매시트포테이토를 얹은 30달러짜리 티본스테이크도 그중 하나였다. 조그마한 식당에서 고기를 자르다 보니 어머니의 식당에서 술안주 삼아 철판 스테이크를 팔던 시절이 생각났다. 인생의 전환점이 돼줄 것 같았다. 한국에서 다시 만들어볼 요량으로 스테이크 이름과 사이드 메뉴, 가격까지 휴대폰에 꼼꼼히 입력했다. ‘불스테이크’의 시작이었다.
귀국하자마자 당시 유명했던 스테이크 푸드트럭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며 틈틈이 노하우를 배우고 사업을 준비했다. 중고차 구매부터 차량 디자인, 개조, 레시피 개발까지 총 4개월 동안 초기 자금 3,000만원을 쏟아부어 자신만의 1평짜리 이동식 주방을 탄생시켰다.
3개월을 오롯이 레시피 개발에 공들인 만큼 김씨는 ‘고기 맛’에 자부심이 크다. “원래 소스 범벅이 된 맛을 안 좋아해서요. 깔끔하게 소금 간만 하려고 엄청 노력했죠.” 소금 간으로만 맛을 내기 위해 가락시장·마장동 등 7~8개 정육점을 다니며 총 80인분의 고기를 사다 먹었다. 주말에는 지인들에게도 시식회를 열어 갖가지 채소와 소금, 부위별 고기를 선보였다. 지금 판매하는 티본스테이크와 파인애플샐러드의 단출한 조합은 김씨 본인을 비롯한 지인 30~40명의 고민이 녹아 있는 결과물이다.
지금은 푸드트럭계의 ‘로또’라는 밤도깨비시장에 입성했지만 거리에서 판매할 때는 서러운 날도 많았다. 노상점포를 열면 꼭 하루에 한 번은 주변 상가로부터 불법주차 민원을 받았다. 핑곗거리에 불과한 민원이라도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철거하는 것이 영업에 이롭다. 신고가 반복되자 아예 지금은 대학가 축제 등 주변 상인의 견제가 없는 곳에서만 좌판을 열고 있다. 구청에 등록된 푸드트럭은 지정된 구역 안에서만 상업 행위를 할 수 있어 최근 개점한 트럭은 김씨처럼 아예 지원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 10개 남짓 파는 겨울에는 특정 지역에 묶여 있을수록 손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1,000개씩 소고기를 나르고 밤마다 20㎏이 넘는 집기를 직접 세척해야 하지만 축제에 나서는 김씨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김씨는 “내 가게에서 직접 개발한 나 자신만의 메뉴로 사람들을 대접하는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올해 목표는 단골 100명 만들기. 언젠가는 커다란 주방이 있는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도 차릴 계획이다.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손사래 치며 너스레를 떤다. “불안정하다며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단골들에게 갓 구운 스테이크를 대접하는 맛을 이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