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지성을 갖춘 기계(intelligent machine)’를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이에 따라 만들어지는 상품·서비스를 산업화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과학·기술·엔지니어링에 치중해서는 안됩니다. 물리·철학·예술 등 기초학문 교육을 탄탄히 해 기술과 가치가 결합된 새로운 인재상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는 24일 오후3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2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이원재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 육성 방안에 대해 이 같은 해법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우선 우리나라 대학의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시작돼 발전한 4차 산업혁명은 미국 등 선진국들에 이미 존재하는 대학 커리큘럼의 결과”라며 “우리 교육 체계는 이런 서양의 학문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지만 실질적 교육 내용과 형식에서는 한참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으로 전 세계 유명 대학 강의를 수강할 수 있는 ‘무크(MOOC)’ 수강생들이 인공지능(AI)이나 가상현실(VR) 등 과학기술 수업과 함께 물리·수학·철학 등 기초학문을 찾는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이 교수는 “빅데이터로 무크를 듣는 수만 명의 행동을 분석해보니 당장 표면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과학기술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기초학문과 결합해 당장 현실에 빠르게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을 찾더라”며 “4차 산업혁명은 기술과 기초학문이 결합된 분야의 인재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은 다양한 학문이 공존하고 교류하는 곳으로 대학 시스템이 실질적인 상호 교류와 융합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커리큘럼을 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과정 개편을 통해 현재 교육을 받고 있는 20대 중반 이후 세대에는 AI 등 지성을 갖춘 기계를 이해하고 작동·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배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미 노동 시장에 진출한 세대에는 새로운 직무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새 기술을 사용하기 어려운 청년 실업층 등이 실질적으로 노동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대규모 장치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이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전체 산업 기술의 진화 속도로 볼 때 대규모 장치·제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기술자들이) 다른 나라로 이동할 것을 전제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 맞춰 산업·고용·기술인력 등 전 분야의 긴밀한 협업과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4차 산업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실업률 상승 등 고통스러운 이행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자리를 나누는 것부터 최소 소득 보장, 직무 재교육, 창업의 공평한 기회 등이 주어질 수 있는 방안이 시민사회 전체의 동의하에 이뤄질 수 있도록 노사정의 협의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해 대규모의 실업과 빈곤이 발생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이미 1964년 미국의 지식인들이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나타났으며 이는 현실화됐다”면서 “산업구조 이행 과정에서 생기는 단기적 실업 증가와 민생의 고통은 당시에도 있었고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나아가는 현재는 이와 같은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후 1년 사이 휴대폰 비서 서비스와 무인 점포·배달 등이 현실화된 점 등을 언급하며 “4차 산업혁명의 진행 속도는 이전의 생산 자동화 정착 과정보다 훨씬 빠르다”며 “그 충격을 고스란히 안아야 하는 세대(노동생산인구)에 대한 단기·중기적 공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교수가 온라인 소셜 데이터(트위터·네이버 지식인 등) 및 언론 보도 등의 4차 산업혁명 관련 이슈들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AI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트위터에서 AI를 언급한 비중은 55%로 빅데이터(13%)나 증강현실(9%) 등 다른 키워드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네이버 지식인에서는 AI가 35%, 알파고가 30%였으며 언론 보도에서는 AI 25%, 사물인터넷(IoT) 21%, 빅데이터 20% 순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