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 위기에 직면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17일(현지시간)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 당국의 내통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를 전격 결정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집권 공화당에서조차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러시아 커넥션’을 둘러싼 정치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그동안 ‘특검 불가’를 외쳤던 트럼프 대통령도 결국 정면돌파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을 통해 “내통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 트럼프 정권의 명운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관련기사 12·19면
로드 로즌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은 이날 러시아의 선거 개입 사건을 특검에 맡긴다고 발표하고 로버트 뮬러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특별검사로 공식 임명했다. 로즌스타인 부장관은 “법무장관 대행으로 내 권한에 따라 특검을 임명하는 것이 독립적 수사와 공공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봤다”며 “다만 이번 결정은 범죄가 이뤄졌거나 어떤 기소가 보장됐다는 결과에 따른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로즌스타인은 트럼프 캠프에 깊숙이 관여했던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지난 3월 ‘러시아 커넥션’ 수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법무장관 대행’으로 특검을 임명했다.
특검에 임명된 뮬러 전 국장은 경륜을 갖춘 강골 검사 출신으로 12년 동안 FBI를 이끌며 공화·민주 양당으로부터 신망을 얻어 이번 수사에 최적의 인사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무부의 발표 후 “철저한 수사를 통해 내 선거캠프가 어떤 외국 기관과도 내통하지 않았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라며 “이 문제가 신속하게 결론이 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애초에 그는 “특검은 필요 없다”는 강경 입장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의 경질 후폭풍과 러시아로의 기밀유출 의혹으로 여론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황에서 ‘러시아 커넥션’의 핵심 인물인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 중단을 코미 전 국장에게 직접 요구했다는 ‘코미 메모’의 보도가 이어지자 무작정 ‘버티기’에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자신은 직접 수사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특검을 수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코미 전 국장 경질을 전후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의혹과 폭로가 나오고 있는데다 그 결과에 따라 대통령이 책임을 지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있어 특검은 당분간 워싱턴 정가의 ‘태풍의 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도 뉴욕타임스(NYT)는 플린이 수사 대상인 것을 알고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하는 인사를 강행했다는 새 의혹을 제기했다. 아울러 의회에서는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까지 합세해 코미 전 국장의 청문회 증언을 거듭 촉구하며 ‘코미 메모’와 러시아 기밀 유출 의혹과 관련된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 외무장관 간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FBI와 백악관을 압박하고 있다. 특검 수사는 물론 코미 전 국장의 증언이나 메모·대화록 중 어느 하나라도 공개될 경우 그 내용에 따라서 이미 불붙은 트럼프 탄핵론은 들불처럼 확산될 수 있다.
이날 의회 본회의장에서 앨 그린 민주당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사법방해’ 혐의로 탄핵할 것을 최초로 공개 촉구했으며 저스틴 아매시 공화당 하원의원도 플린의 수사 중단을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했다는 코미 메모가 사실이라면 ‘탄핵감’이라며 탄핵 여론에 동조한 바 있다.
한편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도박 업계에는 탄핵 확률을 높이며 베팅에 나서는 도박사들이 늘고 있다고 CNBC는 보도했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 ‘프리딕트잇(PredictIt)’에서 연내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될 확률은 8일 7%에서 17일 27%까지 뛰어올랐으며 또 다른 도박사이트에서는 그의 중도 퇴진 가능성을 60%로 예상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