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악연인가, 필연인가...저격수 김상조-삼성의 '얄궂은 운명'

삼성 승계때마다 '편법 논란' 일으켜 끈질긴 발목

최순실 사태도 '포괄적 뇌물죄' 결정적 논리 제공

金내정자 삼성 이해 높고 고민 지점 정확히 알아

건전한 기업지배구조 정착 등 되레 접점 찾을수도



“삼성을 깊숙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급속한 순환출자 해소에 반대하고 중간지주회사의 필요성도 공감하는 학자였습니다. 변화의 기로를 맞은 삼성에는 어쩌면 파트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한 다음날인 18일 공정위의 한 전직 고위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삼성 저격수’로 이름을 날려온 김 내정자의 이력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해석이다. 하지만 공정위 전현직 인사들은 이번 인선 과정에서 거론됐던 여러 공정위원장 후보 가운데 김 내정자가 차라리 삼성 입장에서는 최선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료사회에서는 왜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

김 내정자와 삼성이 ‘악연’인 것은 분명하다.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인 김 내정자는 삼성 승계의 고비 때마다 등장해 삼성을 끈질기게 괴롭혀왔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승계가 이어지는 첫 단추였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관련 소송에서 ‘편법승계’ 논란을 이끌어낸 사람이 김 내정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 때도 치열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특검 수사 과정에서는 ‘포괄적 뇌물죄’라는 구속의 결정적 논리를 특검에 제공했다. 삼성 저격수에 이어 삼성 저승사자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 같은 이력 때문이다.


김 내정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온 삼성 개혁론도 삼성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많다. 김 내정자의 삼성 지배구조 개편 주장의 핵심은 △순혈주의 해소 △투명한 컨트롤타워 △총수의 역할 재조정 등으로 요약된다. 삼성이 이사회 안에 주주가 추천한 이사를 받아들여 이사회 독립성을 높여야 하고 이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내정자의 논리다. 지금은 해체됐지만 삼성그룹을 이끌었던 미래전략실은 김 내정자가 가장 거칠게 공격했던 조직이다. 김 내정자는 “미전실은 권한과 책임이 일치되지 않는 기형적 조직”이라며 “이 부회장이 미전실로 대표되는 ‘가신 경영’을 버려야 산다”고 주장해왔다. 이 부회장을 겨냥해서는 “모든 걸 보고받고 직접 결정하는 ‘CEO형 총수’ 욕심을 버리고 이해 관계자와 소통하는 ‘조정자’의 역할로 돌아서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삼성이 걸어왔고 삼성이 성공했던 방식과는 배치되는 주장이다. 시민단체 수장에서 공정위원장으로 위상이 180도 바뀐 만큼 삼성에 가중되는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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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김 내정자의 이력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변화의 기로를 맞은 삼성에 김 내정자 선임이 최악의 결정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정부의 재벌정책 기조가 뚜렷해진 마당에 ‘거친 칼날’을 휘두르는 설익은 인사보다는 ‘정교한 외과의’가 낫다는 것이다.

김 내정자는 지난 2013년 삼성 수요사장단 회의에 초청돼 강연했을 정도로 삼성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는 진보 학자다. 김종중 전 사장 등 삼성의 핵심 인사들과도 교류를 해왔다. 문 대통령이 김 내정자를 낙점한 것도 그의 ‘합리적’ 성향과 재계 전반에 걸친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 내정자가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 가운데 왜곡된 부분도 분명히 있으나 김 내정자만큼 삼성의 고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고 말했다.

삼성의 궁극적인 지배구조 개편 모델인 지주회사 전환에 대해서도 김 내정자는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견지했다. 지주회사 전환의 중간 단계인 중간금융지주회사에 대해서는 직접 필요성을 언급했다. 공정위가 2008년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추진하면서 국회의 반대에 부딪혔을 당시 김 내정자는 공정위 입장에서 국회를 설득하기도 했다. 전직 공정위 관계자는 “삼성이 순환출자를 한꺼번에 해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현실적인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찾아줘야 한다는 점에서 김 내정자가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며 “결코 반(反)삼성주의라고 볼 수는 없다”고 전했다.

미전실과 같은 법적 실체가 없는 조직은 부활해서는 안 되지만 글로벌 기업인 삼성그룹에 여전히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김 내정자의 시각이다. 건전한 기업지배구조가 정착된다는 가정 아래 거대한 삼성그룹에는 조정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성향은 재판 등의 불확실성이 해소된 후 이 부회장이 다시 운신의 폭을 넓힐 때 삼성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이 부회장은 미전실 수장들을 내치고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며 경영 복귀 시 ‘낡은 삼성’을 떨칠 것임을 예고한 상태다. 김 내정자와 삼성의 방향이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의외로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많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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