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서 일자리의 변화는 가장 뜨거운 주제일 것이다. 고용정보원의 지난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직업인의 절반가량이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80%는 업무의 4분의1 이상이 대체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 응답자의 40% 정도만 4차 산업혁명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제도 개혁에 필요한 에너지가 모자란다.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일자리는 줄지 않는다. 단지 진화할 뿐이다. 지난 250년간의 산업혁명의 역사는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다. 단지 농업인과 가내수공업인이 공장 노동자로 바뀌고 타이피스트가 프로그래머로 변화했을 뿐이다. 80%에 달하던 농업 일자리가 2%로 축소됐으나 78%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면서 인간은 생산성이 높은 일자리로 이동한 것이다. 그 결과 산업혁명까지 2,000년 이상 토머스 맬서스의 덫에 빠져 정체된 1인당 소득이 1차 산업혁명에서 700달러로, 2차 산업혁명에서 2,800달러로, 3차 산업혁명에서 2만달러로 증가했다고 크리스 베인 세계은행 정보책임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에서는 9만달러로 증가할 것이라는 추정치도 제시하고 있다.
평균소득의 증가와 더불어 소득 분배도 산업혁명으로 오히려 개선됐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1800년대 전체의 50%에 달했던 상위 1%의 소득이 지금은 20%대로 개선됐다. 금융 불평등을 주장하는 토마 피케티도 30% 수준의 개선은 인정하고 있다. 지난 산업혁명을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기술 혁신이 인간의 일자리를 진화시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분배도 개선해온 것이다. 그러나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주식시장의 요동과 같이 단기적으로 일자리 소멸과 분배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태풍과 지진으로 지구의 에너지가 순환해 전체의 균형을 찾아가듯 단기적 불균형으로 사회의 혁신 에너지가 순환한 것이다. 치킨값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나 다시 균형을 맞춘다. 단기적 문제에 대한 지나친 개입은 사회의 내재 역량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 아닌가. 결과 지향적인 단기 전략 함정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일자리는 사회 전체의 생산성 향상을 향해 끊임없이 재편돼야 한다. 기업의 업무가 소멸·생성되는 것을 기업 혁신이라고 일컫는다. 혁신은 파괴에서 시작해 생성으로 순환된다. 미시적 관점에서의 일자리 보호가 거시적 관점에서 일자리 위축으로 귀결되는 것은 프랑스를 포함한 숱한 국가 차원의 실험에서 입증됐다. 정부의 치킨값 개입이 시장을 왜곡시킨다. 아직도 정부가 직접 치킨값을 통제하는 국가는 하류 국가다. 사회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거시적 정책이 전개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인가. 국가 전체의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리더십이 국가 거버넌스다. 일자리는 국가 전체의 성장이 극대화되도록 유연하게 재배치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경제포럼(WEF) 등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한국 경제의 취약점이 바로 일자리의 유연성이지 않은가. 일자리의 유연성이 근로자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재교육이라는 일자리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전체 일자리는 유연하되 개인의 일자리는 안전하도록 하는 일자리 안전망이 바로 재교육 시스템이다. 단기적 관점에서의 유연성이 장기적 관점에서의 안정성으로 전환되는 것이 자기 조직화의 원리다. 우리 몸의 세포가 100일마다 소멸함으로써 우리 몸은 100세를 추구할 수 있지 않은가. 단기적 일자리 보호 정책과 장기적 일자리 유연성 정책의 역사적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이제 사회 전체의 선순환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 단순화한다면 상위 1%의 소득이 전체의 20%를 넘지 않도록 하면 된다.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하고 분배 비율이 유지된다면 국가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것이다.